정부, 최고가격제 정유사 손실보전 착수…핵심은 '유종별 원가'
산업부, 이달 말 원가 중심 산정 기준 고시…실질 정산은 7월 이후 전망
정유업계 "연산품 특성상 명확한 산정 어려워"…보전 규모 축소 우려
- 김승준 기자
(세종=뉴스1) 김승준 기자 =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로 발생한 정유사 손실 보전 정산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말까지 원가 중심의 손실 산정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정유사들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출받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원유를 한 번 정제하면 여러 석유제품이 동시에 생산되는 정유업 특성상 유종별 원가를 객관적으로 산정하기 어렵고, 원가 기준만 적용할 경우 보전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최근 정유사에 원가 산정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전날(21일) 브리핑에서 "이번에 요청한 자료는 원가 산정 자체가 아니라 참고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기업 자료를 제출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정유사별로 상이한 원가 산정 구조와 방식을 검토하고, 산정 과정에서 누락되는 요소가 없는지 점검한 뒤 세부 정산 기준을 고시할 계획이다.
손실 정산에 대한 기준과 방향성은 산업부가 만들지만, 검증·심사 작업은 외부 회계법인과 전문가로 구성된 최고액정산위원회가 맡게 된다.
현재 정부는 최고액정산위원회 구성을 위한 후보 추천 및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이다.
양 실장은 "(산정 기준 고시는) 5월 말을 목표로 노력 중"이라며 "다만 정유사들이 2분기 회계 정산을 6월 말에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를 제출받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면 실질적인 정산은 7월 이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자료 제출 요청은 손실 산정 기준 논란 속에서도 '원가 중심 산정'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처음 시행된 제도다. 이에 따라 손실 정산 역시 전례가 없는 첫 사례로, 제도 시행 이후 손실 산정 기준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정부는 손실 보전의 기준을 '원가'로 제시한 상태다. 국제 유가 급등으로 휘발유·경유·등유의 원가가 올랐는데도 최고가격 규제로 원가 이하로 팔 수밖에 없었던 물량에 대해서만 그 손실을 보전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업계에서는 정유업 특성상 손실 보전의 기준이 되는 휘발유·경유·등유의 유종별 원가를 명확하게 산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정유업은 원유를 한 번 정제하면 휘발유·경유·등유뿐 아니라 나프타, 항공유, 벙커C유, 윤활유 등 다양한 석유제품이 연속 공정에서 동시에 생산되는 연산품 구조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제 공정에 투입되는 원유의 성분에 따라 운전 조건과 촉매 투입량이 달라지며 이에 따라 개별 제품의 수율과 생산 비율도 달라진다"며 "이때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각 유종의 원가 계산 결과도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계산 산식은 정유사별로도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낮아지고 여러 산지에서 들여온 원유를 섞어 쓰는 블렌딩이 늘어난 점까지 고려하면 원가 산정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원유 도입가뿐 아니라 운송·보험료, 환율 등 변수를 어느 수준까지 반영하느냐에 따라 손실 산정 결과가 크게 달라질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외부 회계법인의 검토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최고액정산위원회' 심의를 거치면 객관적인 손실 추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정부는 정유 4사의 합산 누적 손실액이 4조 원대에 이른다는 일각의 추산에 대해서는 '기대 이익' 개념에 가까워 손실 보전 대상과는 다르다며 선을 긋고 있다.
해당 추산치는 국제 석유제품 가격과 국내 최고가격 간 차이에 국내 판매량을 곱해 산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정유 시장에서 석유제품(휘발유·경유·등유)의 국제 가격과 각국의 국내 가격이 대체로 비슷한 수준에서 움직이는 점을 감안해, 정상 가격과 최고가격 간의 차이를 손실로 본 셈이다.
즉 국제 거래가격을 이용한 손실 추산치는 최고가격제가 없었을 경우 정유사가 얻을 수 있었던 매출, 다시 말해 일종의 '기대 이익(기회손실)'에 가깝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다만 이 방식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드는 효과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실제 경유의 경우 전쟁 전인 2월 평균 국제 거래가격은 배럴당 89.93달러였지만, 전쟁 발발 후 4월 평균 국제 가격은 195.52달러로 2배 이상 뛰었다. 반면 국내 경유 소비자 가격은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전쟁 전보다 최대 25.6% 오르는 데 그쳤다.
국제 거래가격을 손실 보전에 그대로 적용하려면 가격 상승에 따라 국내 수요가 얼마나 감소했는지에 대한 추가 추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결국 연산품 특성상 유종별 원가 측정이 쉽지 않은 '원가 활용 손실 산정'과, 수요 변화를 전제로 추가 추정이 필요한 '국제 거래가격 활용 손실 산정' 모두 장단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정부는 최고가격제가 최대 6개월 유지된다는 전제로 손실 보전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에 4조 2000억 원 규모의 예비비를 편성한 상태다.
만약 국제 거래가격 기준으로 추산된 4조 원대 손실 규모가 수용될 경우 정부로서는 추가 재원 확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업계에서는 정부의 '원가 기준 산정' 원칙이 최종적으로 관철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유 산업은 환경·안전·제품 기준 규제와 유류세 정책 등의 영향을 크게 받는 대표적인 규제 민감 업종인 만큼, 정부와의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3월부터 정유사들을 대상으로 석유제품 가격 담합 혐의 조사를 진행 중인 점도 업계에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양기욱 실장은 21일 브리핑에서 "손실 산정은 철저하게 원유 도입 비용, 감가상각비, 간접비용 등에 초점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seungjun241@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