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실크로드 도시 물가까지 덮친 중동 전쟁…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500년 전통의 중앙아시아 최대 전통시장,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초르수 바자르의 모습. 2026.5.6 ⓒ 뉴스1 전민 기자

(타슈켄트·사마르칸트=뉴스1) 전민 기자 = 사마르칸트 구시가지를 걷다가 현지인 가이드에게 물었다. "요즘 물가 많이 올랐나요?" 몇 년 전부터 오르고 있었는데, 전쟁 이후 더 가팔라졌다고 했다. 휘발유·경유, 가스 등 에너지 가격은 물론 생필품과 먹거리 물가도 크게 뛰었다고 했다. 맥주 안주로 즐겨 먹는 피스타치오 가격은 최근 두 배가 됐다고 한다. "옛날에는 100달러면 큰돈이었는데, 이제는 2인 가족이 며칠 치 장 보면 끝나요"는 말끝에 쓴웃음이 따라왔다.

중앙아시아 자원 부국인 우즈베키스탄에서도 물가 충격은 예외가 아니었다. 가스 매장량이 풍부하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러시아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수입하는 나라다. 국내 소비용 휘발유 대부분도 러시아에서 들여온다. 중동 전쟁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뒤흔들면서 실크로드 중심 도시도 흔들고 있었다.

사마르칸트에서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가 열렸다. 한·중·일과 아세안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화두는 단연 중동 전쟁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구윤철 부총리,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 앨버트 박 ADB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이야기도 역시나 중동 전쟁에 집중됐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박 수석은 ADB의 새 분석 보고서를 꺼내 들며 경고부터 내놨다. 중동 전쟁이 끝나도 유가는 한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카타르 라스라판 액화천연가스(LNG) 시설 복구에만 3~5년이 걸린다. 단순한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는 것이 ADB의 진단이었다. 구 부총리가 간담회 내내 "중동 전쟁이 얼마나 빨리 끝나느냐가 핵심"이라고 반복한 이유가 이해됐다. 끝나도 끝난 게 아닌 전쟁이었다.

한국에는 이중 충격이 예고됐다. 박 수석은 ADB 기본 시나리오 기준으로 한국 성장률이 4월 전망(1.9%) 대비 최대 0.9%포인트(p) 낮아질 수 있다고 했다. 반도체 호조가 위안이 되는가 싶더니, 이 역시 중동 전쟁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

그는 "반도체 생산 과정에도 중동산 원자재가 최대 8종이 투입된다"며 "분쟁이 길어지면 반도체 공급 확대도 제약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중동 충격을 버티는 버팀목이라고 믿었던 반도체마저, 같은 위기에 노출돼 있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의 발언은 더욱 무거웠다. "금리 인하를 멈추고 인상 사이클 전환을 고민할 때가 됐다." 서울이 아닌 사마르칸트에서, 신현송 신임 총재 대신 참석한 부총재의 입에서 통화정책 방향 전환 신호가 나왔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고, 금리를 올리면 성장이 더 꺾인다. 중동 전쟁이 만들어낸 딜레마다.

최고가격제를 언제 끝낼 것이냐는 질문에 구 부총리는 "중동 상황에 달려 있다"고 했다. 추경도, 최고가격제도, 금리 정책도 결국 중동 전쟁 하나에 묶여 있다. 박 수석은 에너지 보조금 정책을 유지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보조금으로 소비자를 보호하는 나라들도 결국 가격을 올리거나 재정을 더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됩니다. 청구서는 나중에 옵니다."

ADB 연차총회가 열리는 동안 시장에서는 오히려 종전 기대감이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휴전 합의 가능성을 낙관했고, 국제유가는 급락하며 2주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당장 내일 전쟁이 끝나도, 더 이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인프라 복구에는 수년이 걸리고, 에너지 시장은 이미 구조적으로 바뀌었다. 우즈베키스탄 현지인 가이드는 "그래도 한국보다는 물가가 덜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물가와 에너지 시장 불안은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