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동일인, 쿠팡은 시작에 불과하다
- 이철 기자

(서울=뉴스1) 이철 기자 = 동일인. 일반인에게 생소한 단어다. 사건·사고 뉴스를 봐왔던 일반 국민에게는 '동일인의 소행' 처럼 '같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더 잘 알려진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동일인이 29일 화제가 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김범석 쿠팡Inc 의장을 기업집단 '쿠팡'의 동일인으로 지정하면서다. 지난 2021년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이후 5년 만의 변경이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공정위로부터 각종 규제의 대상이 된다. 상호·순환 출자가 금지되고, 특수관계인(친족 등)에 대한 사익편취 금지 대상이 된다. 동일인과 특수관계인이 일정 지분 이상을 보유한 국외 계열사를 공시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까지도 받을 수 있다.
공정위는 기본적으로 사람(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만, 예외적으로 일정 조건을 모두 만족하면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각종 규제로부터 기업 총수를 보호할 수 있으니, 가능하다면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조건은 꽤 까다롭다. 구체적으로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이 최상단 회사 외 국내 계열사에 출자하지 않을 것 △친족이 계열사에 출자하거나 임원으로 재직하지 않을 것 △자연인·친족이 국내 계열사와 채무보증·자금거래가 없을 것 등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쿠팡은 지난해까지 공정위가 내건 조건을 충족해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그러다 지난해 개인정보 유출사고 후 공정위가 올해 쿠팡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가면서, 김 의장의 동생인 김유석 부사장의 존재가 불거졌다. 공정위는 김 부사장이 사실상 쿠팡의 경영에 참여한다고 보고 동일인을 김 의장으로 변경했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국적을 불문하고 동일 잣대를 적용하는 규제 당국의 합리적인 판단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쿠팡이 외국계 기업이고, 김 의장이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미국인인 김 의장은 2010년 미국에서 쿠팡(쿠팡Inc)을 설립하고, 2021년 이 회사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이 쿠팡Inc가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회사인 '쿠팡'의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공시대상기업집단,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 이런 구조를 가진 기업집단은 없었다.
즉, 정부의 이번 결정은 국제사회에서 미국 등 다른 나라와의 힘겨운 줄다리기에 진입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당장 쿠팡은 국내에서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예고했다. 김 부사장이 공정거래법상 임원(대표이사·이사·감사·지배인 등)이 아니며 한국 계열사에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주요 논리다.
통상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크다. 실제 쿠팡의 미국 투자사들은 개인정보 유출사건 당시 국제투자분쟁(ISDS) 의향서를 제출하고, 미 무역대표부(USTR)에 무역법 301조 청원을 제기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간)에는 미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54명이 강경화 주미대사에게 쿠팡 등 미국 기업 차별을 중단하라는 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쿠팡이 미국에서 로비를 더욱 강화할 것은 자명하다.
쿠팡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글로벌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대 사회에서, 이제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하나의 국가에서만 사업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해외 기업이 한국에서 주도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수도 있다. 제2, 제3의 쿠팡이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구조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일관된 원칙 고수와 기민한 외교·통상 대응이다. 다만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국제사회에서 정부의 원칙이 과연 얼마나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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