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 굴려 담합 결정"…한솔·무림 등 제지 6사 3383억 과징금 '철퇴'

과징금 3383억, 담합 사건 '역대 5번째'…제지 담합 사건 중 최대 규모
기준가격·할인율 구조 악용…점유율 95% 시장서 가격 왜곡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 뉴스1 김기남 기자

(세종=뉴스1) 심서현 기자 = 수년에 걸쳐 최소 60회 이상 만나 7차례 가격을 담합한 6개 인쇄용지 제조·판매 사업자(제지사)들이 3383억 원의 '과징금 폭탄'을 부과받았다. 공정위는 이들 중 2개 사는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이번 제재는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 가운데 5번째로 큰 규모이자, 제지업체 담합 사건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금액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이들 회사에 총 3383억 2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23일 밝혔다.

업체별 과징금은 △한솔제지(1425억 8000만 원) △무림피앤피(919억 5700만 원) △한국제지(490억 5700만 원) △무림페이퍼(458억 4600만 원) △홍원제지(85억 3800만 원) △무림에스피(3억 4700만 원) 등이다.

공정위는 이 중 한국제지와 홍원제지는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이들 회사에 법 위반행위 금지명령과 독자적 가격재결정 등의 시정명령도 내렸다. 이에 따라 각 제지사는 국내에서 판매하는 인쇄용지 관련 제품에 대해 담합 전 경쟁을 회복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재결정하고 향후 3년간 반기마다 변경 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인쇄용지 판매시장에서 95%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제지사들의 담합 기간 동안 판매가격이 평균 71% 상승했으며, 그로 인한 피해는 문제집, 서적 등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전가됐다"고 설명했다.

60차례 회합·7차례 가격 합의…공중전화까지 동원 '은밀 담합'

제지 6사는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약 3년 10개월 동안 총 7차례(인상 2회·할인율 축소 5회)에 걸쳐 가격 변경 폭과 시기를 합의했다.

특히 이들은 정기·비정기적으로 최소 60회 이상 회합을 가졌는데, 담합을 주도한 제지사 임직원들은 담합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의사연락 과정에서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근처 공중전화, 식당 전화, 타 부서 직원의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은밀하게 연락을 취했다. 연락처는 별도 종이에 이니셜, 가명 등으로 메모했다.

또 이들은 거래처에 가격 인상을 먼저 통보하는 업체에 거래처의 반발이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담합 참여 회사 간의 통보 순서도 합의했다.

합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동전, 주사위 등을 던져 순서를 결정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의 관련 매출액을 4조 300억 원으로 추산했다. 남 부위원장은 "과징금 부과율은 5개 사에 12%를 원칙적으로 부과했고, 다만 홍원제지에 대해서는 4%를 부과했다"며 "고지상에 있는 감경 사유를 고려한 부분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과징금 3383억 담합 사건 '역대 5번째'…기준가격·할인율 구조 악용해 가격 왜곡

이번 사건의 과징금 부과 규모는 그간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 중 5번째로 큰 금액으로, 제지업체 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 중에는 최대 금액이다.

공정위는 인쇄용지 제조에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해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용이하지 않은 반면, 6개 제지사들은 과거에도 반복적으로 법 위반을 하는 등 담합행위가 관행적으로 고착돼 있는 점을 고려해 시장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적극적인 시정조치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남 부위원장은 "제지 산업은 장치산업으로 원가 구조가 유사하고 제품 차별성이 크지 않은 시장"이라며 "기준가격 제도가 오랫동안 유지돼 온 점도 담합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준가격은 각 제지사가 제조원가에 이윤을 더한 값으로,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일종의 고시가격이다. 실제 판매 가격은 이 기준가격에 거래처별 거래량, 거래조건, 과거 실적 등을 반영한 할인율을 적용해 결정된다.

가격재결정 명령과 관련해 남 부위원장은 "마지막 7차 합의(2024년 8월) 이후 전체 거래처를 대상으로 한 기준가격이 변경되지 않아 아직 합의의 영향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각 제지사들이 국내에서 판매하는 인쇄용지 관련 제품에 대해 담합 전 경쟁을 회복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독자적으로 재결정하고 향후 3년간 반기마다 변경 내역을 보고하도록 했다"고 했다.

남 부위원장은 "이 사건은 국내 인쇄용지 판매시장에서 은밀하게 지속되어 온 대형 제지사들에 의한 가격 담합의 폐해를 시정한 것"이라며 "중동전쟁의 충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쇄업체·출판업체 그리고 중소 유통업체들의 부담 완화에 기여하고 국민들의 교육비, 도서구입비 등 생활비의 안정을, 생활비 인상을 가져오는 독과점 사업자의 담합 소지를 봉쇄해서 경쟁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진행 중인 밀가루·전분당·계란 등 식료품 분야 담합 사건도 신속하게 처리해 법 위반이 확인될 경우에 엄정 조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seohyun.sh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