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비축시설 쓰겠다" 중동 산유국 러브콜…위기시 든든한 '원유 안전판'

호르무즈 봉쇄 리스크에 UAE 등 러브콜…'우선매수권'으로 에너지 안전판 확보
전문가 "사실상 제2의 국가 비축 체계"…수입선 다변화·공급망 안정의 핵심 병기

12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의 오만 무산담주 해안에 있는 선박의 모습. 2026.04.12. ⓒ 로이터=뉴스1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중동 주요 산유국들이 한국의 석유 비축기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정부와 협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산유국 원유를 국내 비축기지에 저장하는 방식이 확대되면서 한국의 원유 수급 안정 기반이 강화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도 대체 원유 확보와 비축 인프라 확충을 병행하며 에너지 수급 안정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제공동비축사업이 확대될 경우 해외 원유 확보 여력이 늘어나면서 위기 대응력과 수입선 다변화 효과가 함께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UAE 등 중동 산유국 "한국 비축기지 쓰겠다"…역외 거점 확보 전략

14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최근 중동 주요 산유국들은 한국의 석유 비축시설 활용을 놓고 정부와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양기욱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이날 '중동 상황 일일브리핑'에서 "최근 우리나라 비축기지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나라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우리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은 원유 수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역외 저장 거점 확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해협 외부에 원유를 미리 저장해두고 필요 시 판매하는 방식으로 공급망 충격을 분산하는 구조다.

이 같은 '국제공동비축사업'은 해외 산유국 원유를 국내 비축기지에 저장하는 대신, 위기 발생 시 해당 물량을 국내 수요에 우선 활용할 수 있는 권리(우선매수권)를 확보하는 구조다. 단순 저장을 넘어 사실상 '간접 비축' 효과를 갖는 방식으로 평가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충남 서산 석유공사 비축기지에서 현장점검을 하고 있다.ⓒ 뉴스1 허경 기자
'우선매수권' 확보로 간접 비축 효과…에너지 안보 '안전판' 기대

자체 비축유와 달리 원유를 직접 구매하지 않고도 공급 여력을 확보할 수 있어, 최근에는 에너지 안보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비축유 방출 부담을 줄이면서도 수급 대응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또 산유국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안정적 물량을 확보할 수 있어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가격 협상력 제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이 비축 거점으로 주목받는 배경에는 물리적인 인프라 경쟁력이 있다. 한국은 대규모 석유 저장시설과 정제·석유화학 설비를 동시에 갖춘 국가로, 안정적인 물류 처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 지정학적으로 중동과 아시아 시장을 연결하는 중간 거점에 위치해 있어, 산유국 입장에서도 역외 비축기지로 활용하기 적합하다는 평가다.

정부는 국제공동비축 확대와 함께 대체 원유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동 사태 이후 정부는 4월 5000만 배럴, 5월 6000만 배럴 등 총 1억 1000만 배럴 규모의 대체 원유를 확보했다. 통상 스팟 계약 물량이 약 2개월 뒤 도입되는 점을 고려하면 7월분까지 공급 기반이 마련된 상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비축유를 방출하지 않고도 5월까지는 안정적으로 대응 가능하다"며 "5월 물량은 평시 대비 80% 수준까지 확보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사실상 제2의 국가 비축 체계"…중장기 공급망 안정 기여

업계에서는 국제공동비축사업 확대가 단순 보완 수단을 넘어 "사실상 제2의 국가 비축 체계를 구축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장태훈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은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으면서도 석유화학 산업 기반이 큰 국가"라며 "산유국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저장 거점으로 활용할 유인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공동비축사업 확대는 단기 수급 안정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 안정 측면에서 의미 있는 안전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