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불씨, 비관세로 옮겨붙나…한미 통상 전선 확대 '촉각'
美USTR "비관세 진전된 입장 보여야"…정부, 확대해석 경계 속 신중
대미투자 지연 넘어 망사용료·쿠팡 규제·농산물까지 재압박 우려
-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재인상을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한·미 통상 협의의 초점이 당초 '대미 전략투자 이행 지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망 사용료와 디지털 플랫폼, 농산물 검역 등 비관세 장벽 전반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간 수면 아래 머물던 비관세 장벽 문제가 다시 협의 테이블 위로 올라오면서, 향후 한·미 통상 갈등의 전선이 한층 넓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8일 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 5일(현지시간)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한국 특파원과 간담회를 가진 조현 외교부 장관은 관세 협의와 관련한 방미 성과에 대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한·미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 중 한국의 통상 분야 이행과 관련해 미국 측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점을 공유해왔다"고 밝혔다.
특히 핵심광물 장관급 회의를 계기로 만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관세 재인상이 초래할 파장을 이해한다"면서도 "한국이 전략투자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 분야에서도 진전된 입장을 조속히 보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게 조 장관의 설명이다.
이는 미국이 관세 재인상의 명분으로 삼아온 대미 투자전략 이행 지연 문제를 넘어, 한국의 제도·규제 전반을 다시 문제 삼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한·미 관세 협상에서 정리된 비관세 분야 합의가 향후 미국의 추가 압박 통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동차·농식품·디지털 등 주요 산업 전반에서 '차별적 규제 해소'와 '절차 개선'을 명분으로 한 미국의 문제 제기가 다시 본격화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다.
특히 디지털 분야는 미국이 가장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해 온 영역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 관세 협상 과정에서 망 사용료와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서 미국 기업이 차별받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하겠다고 명시했다.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하겠다'는 문구에는 위치 정보와 개인정보까지 포함됐다. 이는 한국 국회의 망 사용료 부과 논의와 구글의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 요구 등에 대한 미국 정부와 글로벌 빅테크의 문제 제기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최근 쿠팡을 둘러싼 규제·조사 이슈가 부각되면서, 미국 측이 디지털 플랫폼 전반을 다시 '비관세 장벽' 문제로 재소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쿠팡이 미국 자본이 결합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국내 공정·노동·플랫폼 규제가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비칠 경우 디지털 분야 합의가 또 다른 통상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관세 협상의 부속 합의로 정리됐던 디지털 비관세 장벽 문제가 다시 협의의 전면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농식품 분야 역시 미국의 시장 개방 압박이 이어질 수 있는 영역으로 꼽힌다. 양국은 식품·농산물 교역에 영향을 미치는 비관세 장벽을 논의하기 위해 협력하고, 농업 생명공학 제품의 규제 승인 절차를 효율화해 미국 측 신청 건의 지연을 해소하기로 했다. 미국산 원예작물 관련 요청을 전담하는 '코리안 데스크'도 이미 설치돼 가동 중이다.
쌀과 쇠고기 등 민감 품목의 추가 개방이나 관세 인하까지는 담기지 않았지만, 과일 검역 절차 신속화와 유전자변형(GM) 작물 승인 절차 손질은 미국산 농산물의 국내 진입 문턱을 낮추는 조치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를 발판으로 미국이 개별 품목과 규제 사안을 집요하게 문제 삼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투자 이행 지연을 계기로 시작된 협의가 비관세 장벽 전반, 나아가 제도·규제 구조 개선 요구로 확장할 경우 한국의 통상 리스크 관리는 한층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를 통해 '상호 무역 촉진을 위한 공약과 이행 계획'을 올해 안에 명문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의 요구 속도와 강도에 따라 통상 환경은 언제든 다시 불확실성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관세 재인상이라는 직접적 압박을 넘어, 비관세 장벽을 둘러싼 구조적 갈등이 재점화할 경우 이번 협의 국면이 단기적 봉합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만 정부 내에서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미국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협의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현재까지 양국 통상 협의에서 비관세 장벽과 관련한 구체적인 미국의 요구를 전달받은 바는 없다"고 말했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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