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조 연기금 '삼천닥' 돈줄로…평가기준 고쳐 코스닥 투자 물꼬

코스닥 BM 도입·벤처 가점 2배…3.7% 그쳤던 투자 비중 대폭 확대
환차익 이용한 '수익률 착시' 차단…환위험 관리 평가 신설

2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증시 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2026.1.29/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세종=뉴스1) 전민 심서현 기자 = 내년부터 정부 기금들이 코스닥과 벤처기업 투자를 확대하도록 유도하는 평가 체계가 도입된다. 기금 성과 평가의 기준이 되는 벤치마크(BM)에 코스닥 지수 반영을 허용하고, 벤처투자 가점도 두 배로 늘린다.

1400조 원 규모에 달하는 연기금이 코스닥 시장의 앵커 투자자(핵심 투자자)로 나서 정체된 국내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으라는 주문이다. 아울러 외환시장 변동성에 대응해 환율 위험 관리 평가도 강화한다.

또한 자산운용 평가 항목에 환율 변동 위험 관리 노력이 신설된다. 일부 기금이 자산운용 지침과 달리 환오픈(언헤지) 전략을 통해 환차익을 얻고, 이를 운용 수익률 성과로 포장하던 관행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기획예산처는 29일 임기근 기획예산처 장관 직무대행 차관 주재로 기금자산운용정책위원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2026회계연도 기금운용평가 지침 개정안'과 '2026년 기금 자산운용 기본방향'을 의결했다.

벤처투자 가점 2점으로 상향…코스닥 투자 길 터준다

정부는 우선 국내 모험자본과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유인책을 대폭 강화했다. 현재 100점 만점인 기금평가에서 벤처투자 등 혁신성장 투자가 포함된 가점 항목 배점을 기존 1점에서 2점으로 상향 조정했다.

초기 수익률이 낮은 벤처투자의 특성을 고려해 투자 초기 기간에는 수익률 산정에서 배제하는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이와 함께 국내 주식 투자의 벤치마크(BM)에 코스닥 지수를 일정 부분 혼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기존에는 벤치마크가 대부분 코스피 위주로 설정돼 있어, 운용역들이 성과 평가 불이익을 우려해 코스닥 투자를 기피하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정부가 이처럼 평가 체계까지 뜯어고친 것은 연기금의 국내 자본시장 기여도가 낮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연기금의 전체 국내 주식 투자 규모 중 코스닥 비중은 3.7%(5조 800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성장할 수 있는 기업 지원을 위해 코스닥에 대해서도 안정성과 수익성을 전제로 투자를 고려해보라는 것"이라며 "연기금의 성격이나 공적인 역할을 봤을 때, 전향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정부가)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용 계획엔 '헤지', 실제론 '오픈' 꼼수 안 돼…평가 체계 정비

정부는 우선 기금운용평가 지침을 개정해 자산운용 위험관리 항목에 '환율 변동 위험 관리 노력'을 정성평가 지표로 추가했다. 해외투자 비중이 확대됨에 따라 환율 변동성이 기금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은 기금들이 환율 효과를 통해 수익률을 부풀리는 착시 현상을 방지하는 데 방점을 뒀다. 그동안 일부 기금은 자산운용지침(IPS)상에는 환헤지를 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워두고, 실제 운용 시에는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 시기 환차익을 노려 환 오픈 전략을 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경우 평가 시에는 환헤지를 가정한 벤치마크(기준 수익률)를 적용받으면서 실제 수익은 환차익이 포함된 실적을 내세워 초과 수익을 달성한 것처럼 왜곡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 개정은 최근 요동치는 외환시장 상황과 무관치 않다. 최근 달러·원 환율이 1400원대 초반으로 다소 안정세를 찾았지만, 지난달에는 심리적 저지선인 1480원을 넘나드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외환시장 큰손인 국민연금은 환율 안정을 위해 환헤지 비율을 늘리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 자금으로 정부의 환율 방어에 동원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IPS 수립 시에는 헤지 전략을 세웠다가 평가 때는 오픈된 실적을 헤지 기준 수익률에 대입해 실적이 과대평가 되는 문제가 있었다"며 "앞으로는 실제 운용된 환 정책에 맞춰 기준 수익률을 적용하도록 평가 체계를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 위험 관리 수단을 마련하지 않으면 감점하는 식의 기계적 평가는 아니지만, 각 기금이 변동성을 축소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정성적으로 평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는 모습. 2026.1.19/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사상 첫 '자산운용 기본방향' 수립…국내 우량기업 투자 강조

정부는 이날 기금 운용의 가이드라인이 될 '2026년 기금 자산운용 기본방향'도 함께 확정했다. 개별 기금의 운용 계획 수립 시 참고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표준화된 투자 방향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본방향은 기금의 자산운용 원칙으로 △안정성 △유동성 △수익성 △공공성을 제시했다. 특히 공공성 측면에서 벤처·스타트업 생태계 지원과 국내 저평가 우량 기업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벤처투자의 경우 모펀드가 손실을 우선 충당하는 'LP지분유동화펀드' 등을 활용해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자금을 공급하도록 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는 위탁운용사를 활용해 전문성을 보완하고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하도록 권고했다.

아울러 정부는 대형 기금을 중심으로 '기준 포트폴리오' 체계 도입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기준 포트폴리오 체계는 위험 허용 한도 내에서 운용 조직에 자산 배분 재량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미 국민연금을 비롯해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글로벌 연기금이 채택하고 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60여 개 기금 중 투자풀에 위탁하지 않고 자체 운용하는 연기금 등의 자산까지 포괄해 정부 전체의 재정 운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라며 "각 기금이 IPS를 수립할 때 이번 기본방향을 충실히 반영했는지 여부도 향후 평가에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임 직무대행은 회의에서 "기금의 여유자금은 2025년 기준 1400조 원에 육박할 전망인 만큼,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며 "기금자산운용 정책 거버넌스로서 기금자산운용정책위원회를 신설하고, 자산운용 기본방향을 수립·배포해 각 기금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어 "기금 여유자금의 효율적 운용을 통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하면서도 공적 재원으로 조성되는 만큼 혁신생태계 활성화와 신성장 동력 발굴 등 사회경제적 책임도 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