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외환위기 가능성 없다"…달러 창고 풍족, 환율은 수급 문제

외화자금시장은 넉넉하지만 환율은 현물 수급에 따라 상승
순대외채권국·충분한 외환보유…한은, 근거 없는 비관론 경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는 모습. 2026.1.19/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세종=뉴스1) 이강 기자 = 한국은행은 외화자금시장, 이른바 '달러 창고'에는 유동성이 충분하지만, 환율이 결정되는 현물환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엇갈리면서 달러·원 환율이 상승했다는 진단을 내놨다.

최근 환율 상승을 외화 부족이나 외환위기 가능성으로 해석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한은은 19일 공식 블로그에 '외화자금시장에 달러는 많은데 환율은 왜 오르는 것일까?'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하고, 환율은 현물환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달러는 '창고'에 쌓였는데…환율은 '계산대'에서 오른다

한은이 설명하는 최근 달러 시장은 '풍요 속의 빈곤'에 가깝다. '달러 창고'인 외화자금시장은 풍족하지만, 달러가 실제로 사고 팔리며 환율이 결정되는 '계산대'인 현물환시장에서는 수요가 공급을 따라잡지 못해 달러값이 오른다는 의미다.

외화자금시장과 현물환시장은 달러가 거래되는 목적과 환율에 반영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먼저 외화를 빌리거나 빌려주는 외화자금시장은 은행을 중심으로 차입과 외환스와프 거래를 통해 외화 유동성을 관리하는 금융시장이다.

반면 현물환시장에서 거래되는 달러는 수출입 결제나 해외투자와 같이 실제 지급과 결제를 위해 기업과 투자자가 사고파는 달러다. 환율은 이처럼 결제 목적의 달러가 오가는 현물환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이 때문에 외화자금시장에 달러가 충분히 쌓여 있더라도, 자금의 주체인 금융기관이 이를 현물환시장에 내놓지 않으면 환율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금융기관은 이 자금을 외화 유동성 관리나 외화예금 형태로 보유하려고 한다. 외화자금시장에 쌓인 달러는 외환스와프나 차입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만기가 도래하면 다시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달러 강세만으로 설명 안 돼…서학개미가 만든 수급 차

통상 환율을 움직이는 가장 중대한 요인이자 관측 가능한 변수로는 '글로벌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지수(DXY)가 꼽힌다. 달러·원 환율은 일반적으로 DXY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최근에는 DXY와 환율 간 괴리가 커졌다. 2022년 이후 올해 1월 중순까지 달러화지수는 약 4% 내외 상승(가치 상승)한 반면 달러·원 환율은 23%가량 상승(가치 하락)했다.

한은은 그 배경으로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를 비롯한 수급요인을 꼽았다. 글로벌 달러 강세보다는 거주자의 해외투자 확대 등으로 현물환시장에서 빠져나간 달러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1~11월 누적 기준 경상수지는 1018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지만, 같은 기간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는 1294억 달러, 해외직접투자는 268억 달러에 달했다. 반면 외국인의 국내증권투자는 504억 달러, 직접투자는 63억 달러에 그쳤다.

특히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 가운데 약 80%를 차지한 해외주식 투자는 대부분 달러로 환전돼 유출된 반면, 외국인의 국내 채권투자 자금 상당 부분은 외환스와프를 통해 유입돼 현물환시장에서 달러 매도로 연결되지 않았다.

반면 달러 창고는 풍족해졌다. 외국인의 채권투자 자금은 상당 부분이 외환스와프 거래를 통해 유입되면서 현물환시장에서 달러 매도로 연결되기보다는 외화자금시장에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이 같은 흐름에 더해 지난해 11월 후반부터는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의 달러 매수세가 강화되면서, 외화자금시장에서는 달러 자금 공급이 더욱 늘어난 반면 현물환시장에서는 달러 매입 수요가 확대됐다.

그 결과 외화자금시장은 달러가 넘치는 상황이 지속된 반면, 현물환시장에서는 달러 부족이 심화하며 양 시장 간 수급 불균형이 한층 확대됐다.

"국가부도위기·외환위기 가능성 주장, 전혀 타당하지 않아"

한은은 "환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과거 발생한 전형적인 국가부도위기 혹은 외환위기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순대외채권국이자 충분한 외환보유고와 대규모 대외순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전형적인 위기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는 설명이다. 이에 한은은 "과거 외환·금융위기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외환위기는 대외지급능력 약화로 달러 차입이 어려워지고, 차입 비용과 환율이 동시에 급등하는 국면에서 발생하는데, 현재는 외화표시채권 가산금리와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모두 낮은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외환위기는 '달러 창고가 동날 때' 발생한다. 달러를 빌릴 수도, 굴릴 수도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해외에 진 빚보다 받을 돈이 더 많은 순대외채권국으로, 외화가 부족해 빚을 갚지 못하는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다만 한은은 근거 없는 위기론이나 과도한 비관론이 확산할 경우 환율에 대한 일방향 기대가 형성돼 외환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계했다. 이에 따라 중장기적으로는 펀더멘털 개선을, 단기적으로는 외환 수급 불균형과 기대 심리를 완화하는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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