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형 대신 '징벌적 과징금'…제2의 퀄컴 사태 땐 수조원 부담
시지남용·담합 과징금 한도 대폭 상향…쿠팡·퀄컴 사례 재발시 '조단위' 폭탄
유통·하도급 '갑질' 징역형 폐지하고 과징금 10배…보안사고도 '돈'으로 책임
- 전민 기자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당정이 30일 발표한 '2차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의 핵심은 기업 활동에 대한 제재 방식을 형사처벌 중심에서 '금전적 제재'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기업인의 형사 리스크는 줄이되,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부당 이익을 환수하고 징벌적 성격의 과징금을 부과해 법 위반 억지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특히 공정거래법 위반 제재의 경우 정액 과징금 한도 상향뿐만 아니라, 매출액에 비례하는 '정률 과징금' 부과율이 대폭 높아진 점이 기업들에 실질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날 발표된 2차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에 따르면 담합(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정액 과징금 한도는 현행 4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행위는 2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각각 상향된다.
하지만 정액 한도보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매출액 대비 부과율' 상향이다. 이번 개정안으로 담합 과징금 부과율 상한은 관련 매출액의 20%에서 30%로, 시장지배적지위 남용은 6%에서 20%로 대폭 강화됐다.
현행법상 과징금은 위반 행위와 관련된 매출액에 일정 비율을 곱하는 '정률 과징금' 부과가 원칙이다. 100억 원으로 상향된 '정액 과징금'은 매출액 산정이 곤란한 예외적 경우에만 적용되는 한도액이다.
실적 데이터가 명확한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 정률 과징금을 적용받기 때문에, 정액 한도 상향보다 부과율 상향이 훨씬 치명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사례에 대입해 보면 그 파급력이 명확해진다. 역대 최대 과징금(1조 311억 원)을 기록했던 2016년 '퀄컴 사건'의 경우, 당시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행위에 대한 과징금 상한선인 3% 기준 내(2.7%)에서 부과율이 결정됐다. 이후 2021년 법 개정으로 상한이 6%로 올랐고, 이번 방안에 따라 20%까지 상향된다.
단순 산술 계산으로 상한 비율 상승분(3%→20%)을 적용하면, 퀄컴이 물어야 할 과징금은 이론상 최대 7조 6000억 원에 이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유통업계에서 역대 최대 과징금을 기록한 쿠팡 사례도 비슷하다. 공정위는 지난 8월 쿠팡의 검색 알고리즘 조작 등(위계에 의한 고객 유인) 혐의에 대해 최종 162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공정위는 관련 매출액을 약 8조 원대로 산정하고, 위반 행위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약 2%의 부과 기준율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된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과징금 상한인 20%를 적용할 경우, 산술적으로 과징금 규모는 현재의 10배인 1조 6000억 원대까지 불어날 수 있다.
담합 역시 마찬가지다. 관련 매출이 1조 원인 담합 사건의 경우 기존에는 최대 2000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으나, 앞으로는 최대 3000억 원까지 부과될 수 있다. 형사 처벌 없이도 기업의 존폐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의 '징벌적 배상' 성격을 갖게 되는 셈이다.
유통과 하도급 분야에서는 경영 활동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불공정 행위에 대한 징역형을 폐지하는 대신, 과징금 한도를 대폭 높여 경제적 책임을 강화했다.
기존 '대규모유통업법'은 납품업체에 대한 경영 간섭 시 징역 2년 이하의 형벌을 규정했으나, 개정안은 이를 삭제하고 과징금 상한을 기존 5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10배 상향했다. 하도급법상 원사업자가 선급금을 미지급한 경우에도 기존에는 벌금형 부과가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시정명령과 함께 최대 5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개인 위치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제재 방식도 대폭 바뀐다. 현행 위치정보법은 기업이 관리적·기술적 보호 조치를 소홀히 해 정보가 유출될 경우 담당자에게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부과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이를 과징금으로 전환하되, 상한액을 기존 4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5배 상향했다. 실무자를 처벌하는 것보다 기업에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안겨 보안 투자를 강제하는 것이 재발 방지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밖에도 고의성이 없거나 단순 행정 절차를 위반한 경우에는 형벌 대신 과태료를 부과해 기업과 소상공인의 전과자 양산을 막는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상 캠핑카 튜닝 후 검사를 받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과태료 부과로 완화된다. 농어촌에서 빈번한 비료 과대광고 역시 기존 징역 2년 이하 처벌 조항이 삭제되고 벌금형으로 완화되거나 과태료로 전환될 예정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업의 중대 위법행위에 대해 과징금 등 금전적 제재를 대폭 강화하겠다"며 "불공정 거래 행위나 위치 정보 유출 방지 노력의 미비 등에 대해 형벌 중심 관행에서 벗어나 시정명령과 함께 대폭 상향된 과징금을 통해 기업 위법행위를 실효적으로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min7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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