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0원대 '벼랑 끝 원화'…'코리아 디스카운트' 극복 시급[2025경제결산]③
환율 1400원 후반대 요지부동…시장선 1500원 돌파 경계
수급대책에도 자본유출형 약세 지속…경제 체질 개선 필요
- 임용우 기자
(세종=뉴스1) 임용우 기자 =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이라는 거대 분수령을 넘었음에도 한국 경제가 '고환율'이라는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달러·원 환율이 1400원대 후반에서 요지부동인 가운데, 시장에서는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 돌파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가용한 외환 수급 대책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시장은 "단기 처방일 뿐"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최근의 환율 급등을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 문제라기보다 외화 수급의 일시적 불균형으로 진단한다. 이에 따라 시중에 달러 공급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방위적 대책을 단행하고 있다.
우선 달러 유출을 막기 위한 '방어막'을 강화했다. 국민연금의 달러 수요가 현물환 시장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지 않도록 한국은행과의 외환스와프를 연장하고, 환헤지 비율을 상향 조정해 달러 수요를 분산시켰다.
동시에 국내로 유입되는 달러의 통로를 넓히기 위해 '외환 건전성 규제' 완화와 외국인 투자 환경의 개선에 집중했다.
기획재정부는 △은행의 외화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를 한시적으로 유예하고 △외국계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비율을 200%로 확대했으며 △원화 용도 외화대출 확대를 통해 시중의 달러 공급량을 늘리는 데 주력했다.
또한 외국 자본이 더 쉽고 빠르게 들어올 수 있도록 △외국인 통합계좌를 통한 국채 및 주식 투자 활성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여기에 △해외 증시에 상장된 외국 기업에 대해서는 '전문투자자' 지위를 부여해 절차적 불편을 해소할 계획이다.
한국은행 역시 파격적인 후속 조치를 내놨다. 한은은 △은행들이 한국은행에 예치하는 외화 지급준비금에 대해 한시적으로 이자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는 은행들이 달러를 해외로 내보내기보다 국내에 보유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또한 △은행들이 외화 부채를 들여올 때 부과되는 외환건전성 부담금을 6개월간 면제해 조달 비용을 대폭 낮췄다.
하지만 시장의 시각은 정부와 차이가 있다. 이번 환율 상승이 단순히 해외투자 급증에 따른 수급 불균형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시장 자체의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본 유출형 약세'라는 지적이다.
우리 화폐의 실제 구매력은 과거 국가 위기 상황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집계한 11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REER) 지수는 87.05를 기록했다. 이는 IMF 외환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1998년 11월(86.63) 수준과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85.47) 수준에 육박한다. 한국 경제가 겪은 대형 위기 때와 원화의 실질 가치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원화의 구매력 순위는 전 세계 64개국 중 63위로 밀려났다.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 엔화(64위)를 제외하면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빠르게 증발한 화폐다.
김서재 신한은행 S&T센터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성장성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며 "단기적인 조달 대책만으로 환율의 방향을 돌리기는 역부족"이라고 꼬집었다.
과거 고환율이 수출 가격 경쟁력을 높여 경기를 부양했던 '환율 효과'도 이제는 옛말이다. 오히려 원자재 수입 비용 상승이 기업 수익성을 갉아먹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원화 가치가 10% 하락할 때 제조업 전반의 영업이익률은 오히려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에너지 수입 비용의 경직성도 우려를 더한다. 원화 약세는 시차를 두고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 압박으로 이어져 가계의 실질 소득을 줄인다.
한국은행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춰야 하는 상황임에도, 환율 자극에 따른 '수입 인플레이션' 공포 때문에 더 이상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기 어려워졌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금융위기는 아니지만, 환율 상승이 수출과 내수의 격차를 키워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의 엄중한 위기"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잇따른 환율 안정 대책이 시장의 변동성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어막' 역할은 할 수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외화 수급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단기 처방을 넘어, 해외로 빠져나가는 자본의 흐름을 국내로 돌릴 수 있는 근본적인 경제 체질 개선이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환율 1500원 시대의 고착화 여부는 정부의 수급 대책뿐만 아니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패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며 "단순한 환율 방어를 넘어 한국 시장의 매력을 회복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정책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phlox@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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