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력난에 美 대형 원전 8기 건설한다는데…셈범 복잡해진 'K-원전'

중동 이어 유럽, 원전 강국 美로 시장 확대 '기대'
한수원-WEC, 불공정 계약은 부담…"사업 참여 신중해야"

11월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수감사절 휴가를 보내기 위해 플로리다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11.25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지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미국이 신규 대형 원전 8기 건설 계획을 밝히면서 'K-원전'의 첫 진출 가능성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중동에 이어 최근 체코 신규 원전 수주로 유럽까지 깃발을 꽂은 K-원전의 앞에 탄탄대로가 열렸다는 평가다.

다만 해외 원전 수출을 이끄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미국 원전기업인 웨스팅하우스(WEC)와의 불공정 계약은 부담이다. WEC에 수천억에 달하는 기술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등 일방적인 계약 조건이 사실로 드러난 상황에서 자칫 실익 없는 사업에 들러리를 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AI 전력난에 신규 대형 원전 8기 건설 추진…K-원전 수혜 기대↑

1일 원전 업계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I(인공지능) 개발로 인해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800억 달러(약 117조 원)를 투입, 신규 대형 원전 8기 건설을 추진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와 그 모기업인 브룩필드 자산운용, 카메코와 협력해 대형 원자로 'AP1000' 건설을 대대적으로 추진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이번 계획을 통해 4개 부지에 모두 8기의 AP1000 원자로를 건설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AP1000은 1기당 약 1100메가와트(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중소도시 하나를 통째로 밝히거나, 거대 기술 기업의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24시간 가동하기에 충분한 용량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추진 배경에는 AI 데이터센터 가동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수십 년간 정체했던 미국 원전 산업의 부활을 꾀하겠단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읽힌다.

대형 신규 원전 건설 계획 발표에 'K-원전'의 첫 미국시장 진출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지은 아랍에미리트 바라카원전이나, 최근 수주에 성공한 체코 신규 원전과 같이 순수 한국형 원전 모델 수출은 아니겠지만, K-원전 기술이 함께 투입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원전 수출이 가능한 국가는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한국 등 5개국뿐이다. 그중 중국·러시아는 미국·유럽과의 갈등으로 수출에 제약을 받고 있어 사실상 참여가 불가능하다.

한국을 제외하면 남은 것은 미국·프랑스인데 미국의 경우 원전 설계에는 특화돼 있지만, 실제 시공 능력이 한참 미치지 못해 이미 시장 경쟁에서 뒤처져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프랑스는 시공 능력은 갖췄지만,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을 최대 강점으로 한 한국과 경쟁력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게 세계 원전시장에서 나오는 평가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 중동에 이어 첫 유럽국가인 체코 신규 원전을 수주하기도 했다.

한국전력과 UAE원자력공사는 UAE 바라카 원전 3호기가 지난 24일 상업운전을 개시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바라카 원전 3호기 전경. (한국전력 제공) 2023.2.26/뉴스1
한수원-WEC 불공정 계약은 부담…"프로젝트 참여, 실익 담보해야"

업계에선 'K-원전'의 미국시장 진출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지난 체코 신규 원전 수주 과정 속 이뤄진 한수원과 WEC 간 불공정 계약 논란이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실익 없는 사업에 들러리를 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에 지을 대형 원전인 만큼 자국기업인 WEC가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한수원이 공동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데 두 회사가 앞서 체결한 계약대로라면 사업에 참여해도 실익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임 윤석열 정부는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를 따내려는 목적으로 웨스팅하우스의 지식재산권 소송을 물리기 위해 한미 원전 동맹을 맺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 계약도 맺어졌다.

그러다 지난 8월 우리 원전을 수출할 때마다 웨스팅하우스 측에 기술사용료 명목 1억 7500만 달러와 물품·용역 구매 계약 6억 5000만 달러 등 한화로 총 1조 1400억 원을 넘겨야 한다는 계약 내용이 알려지면서 불공정 논란이 불거졌다.

50년 장기계약인 데다 이후 5년마다 연장도 가능하다는 독소조항도 포함돼 사실상 '종신계약'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논란의 계약 내용이 밝혀진 이후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한수원에 실제 계약서 공개를 요구했고, 지난달 1일 한수원 내놓은 계약서에서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그 결과 불공정 계약의 책임을 지고 황주호 전 한수원 사장이 직에서 물러났고, 정부는 계약 절차에 대한 적정성 여부를 조사 중이다.

원전 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 WEC와의 계약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장기적으로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면서 "사실상 법적정책적 리스크에 더해, 기술 자립성에 대한 문제까지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다른 관계자는 "WEC와의 협력이나 JV(조인트벤처) 설립을 통해 양 사가 가진 원천기술과 시공역량을 결합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