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이냐, 환율 방어냐…국민연금 '외환 소방수' 딜레마

환율 1480원 턱밑…당국-연금 비공개 회동에 쏠린 눈
"연금 등판 시 수급 개선 효과" vs "미봉책에 불과"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2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환전소에 환율정보가 표시돼 있다. 2025.11.24/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달러·원 환율이 심리적 저지선인 1480원 선을 위협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외환당국과 '외환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의 행보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이 이날(24일) 국민연금과 비공개 회의를 가질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헤지' 카드를 꺼내 들어 환율 고공행진의 '소방수'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본질적 목표인 '수익성'과 충돌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아 딜레마가 깊어지는 형국이다.

"구조적 수급 불균형 해소해야"…커지는 '연금 등판론'

24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1476원으로 거래되며 연고점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1480원대에서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가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장에서는 최근 고환율의 원인을 과거와 같은 경상수지 적자가 아닌, 수급 구조의 변화에서 찾고 있다.

경상수지는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국민연금과 이른바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가 급증하면서 달러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구조적 불균형이 고착화됐다는 분석이다.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 규모는 약 700조 원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이 중 일부에 대해서만이라도 환헤지(달러 매도) 비율을 높인다면, 시장에 막대한 달러 유동성을 공급해 환율 상승 압력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24일 "국민연금 규모가 커지면서 자금이 대규모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환율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며 "환헤지 계약 시 은행이 반대매매를 통해 시장에 달러를 공급하게 되므로 수급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이어 "원론적으로는 연금이 수익 외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건 좋지 않지만, 국가 경제가 살아야 노후 소득 보장도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적정 규모의 헤지는 필요하다"고 "비용을 따져볼 필요가 있으나 적정한 규모의 헤지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모습. 2025.11.3/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노후자금 수익률이 최우선"…'환오픈' 고수하는 이유

반면, 국민연금을 환율 방어에 동원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국민연금은 지난 2015년부터 해외 투자 자산에 대해 환헤지를 하지 않는 '전액 환오픈'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환헤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환차익을 통해 기금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국민연금연구원은 지난 2022년 "해외 자산 가격이 하락할 때 통상적으로 환율이 상승(원화 약세)하여 손실을 상쇄하는 '자연 헤지' 효과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100% 환오픈 정책이 수익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인위적인 환헤지는 결국 국민의 노후 자금인 기금의 수익률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을 동원해 일시적으로 환율을 안정시키거나 주가를 부양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만약 환율 방어를 위해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높였다가 나중에 자금을 회수하면 주가가 폭락해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다"며 "국민연금을 외환시장에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근본 원인은 '성장 격차'…"펀더멘탈 개선이 정공법"

전문가들은 현재의 자금 유출과 환율 상승이 한국과 미국의 근본적인 체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AI 혁명을 주도하며 고성장하는 미국과 저성장이 고착화된 한국 간의 '기대 수익률 격차'가 투자 자금을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금을 동원한 환율 방어는 급한 불을 끄는 미봉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밸류업 지원과 규제 혁파 등을 통해 국내 시장의 매력도를 높여 나간 돈이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정공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정식 교수는 "경상수지 흑자는 긍정적이지만 반도체 착시 효과일 수 있고, 내수 침체와 성장률 둔화 등 부정적 펀더멘탈 요인이 더 크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는 것"이라며 "근본적인 경제 체질 개선 없이는 환율 안정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당국과 국민연금이 이번 회의를 통해 전면적인 전략 수정보다는 시장의 쏠림을 완화하는 수준의 절충점을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 1480원을 1차 저지선으로 두고, 국민연금이 필요시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 조정)에 공조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