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기 "금산분리 완화 요구는 '민원'…규제 탓 안돼" 신중론
"제조업 본업 충실해야…대기업 '손정의' 흉내 말라"
"지주사 자·손자회사 신규 상장시 의무지분율 50%로 상향 예고"
- 전민 기자, 심서현 기자
(세종=뉴스1) 전민 심서현 기자 =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재계의 금산분리 완화 요구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일종의 '민원성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어 상당히 불만"이라고 지적했다.
주 위원장은 21일 정부세종청사 인근에서 가진 출입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30년, 50년, 서구에서는 100년 된 규제를 개별 사안이나 몇 개 회사의 민원 때문에 바꿀 수는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오찬 직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제력 집중이나 독과점 폐해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서 신중론을 펼쳤다.
주 위원장은 국내 대기업들이 본업인 제조업보다 벤처투자 등 문어발식 확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건 주력 기업들이 자기 본업에 충실한 것"이라며 "기업들이 투자회사를 만들어 '손정의'(소프트뱅크 회장)처럼 여기저기 투자를 확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조업은 본업에 충실해야 하며, 손 회장처럼 이미 큰 기업들에 투자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오전 간담회에서도 주 위원장은 현행 규제가 기업 성장을 저해했다는 최태원 SK그룹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재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SK하이닉스나 삼성 반도체 등 모든 기업이 현재의 규제 체제 속에서 기술 성장을 거듭했다"며 "공정거래법에 따른 경제적 강자에 대한 견제력이 있었기에 한국 경제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주 위원장은 금산분리 완화를 '최후의 수단'으로 규정했다. 그는 "공장을 짓는데 다른 대안이 있다면 왜 굳이 규제를 바꾸려 하느냐"며 "금산분리 완화는 정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생각해야 할 카드"라고 덧붙였다.
규제 완화에 선을 그은 주 위원장은 지주회사 관련 규제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지주회사의 소위 '쪼개기 상장'(중복 상장)을 막기 위해 자회사나 손자회사를 신규 상장할 경우 의무 지분율 요건을 현행 30%에서 50%로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주 위원장은 오전 간담회에서 "현행법은 상장회사의 경우 의무지분율을 30%로 완화해주고 있으나, 지배주주의 과도한 지배력 확장을 방지하고 일반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 향후 신규 상장 시에는 이를 50%로 유지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에 상장된 기업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총수 일가(동일인)의 사익편취 규제도 한층 촘촘해진다. 공정위는 사익편취 규제 대상 지분율을 산정할 때 발행주식 총수에서 '자사주'를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자사주를 포함할 경우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낮게 계산돼 규제를 회피하는 꼼수를 막겠다는 취지다.
재계가 요구해 온 동일인 지정 제도 개선이나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기준 상향(GDP 연동) 등에 대해서도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며 일축했다. 주 위원장은 "공시는 규제가 아닌 공적 기업의 의무"라며 "총수 일가가 기업 가치에 반하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문제가 여전한 상황에서 투명성은 훨씬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과도한 형벌 규정은 개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주 위원장은 "성숙하지 못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경영자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 형벌이 효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경제 규모가 달라졌다"며 "다른 나라처럼 경제적 제재(과징금 등)로 처리할 수 있도록 불필요하게 과도한 형벌 규정은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는 법 집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직과 인력을 대폭 확충한다. 민생 경제 지원과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 총 167명의 인력을 증원할 계획이다.
우선 가맹·유통·하도급 등 민생 밀접 분야의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가맹유통심의관'을 신설하고, 관련 사건 처리 인력을 61명 대폭 보강한다. 또한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병목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상임위원 1명을 포함해 심판 인력도 19명 늘리기로 했다.
특히 건설 경기 둔화에 대응해 하도급 대금 지급 안정성을 위한 '3중 보호장치'(원사업자 지급보증 의무 강화·원도급계약 정보요청권 부여·전자대금지급시스템 의무화)를 마련하고, 하도급 대금 연동제 범위도 에너지 비용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서울사무소에서 경기·인천 지역 업무를 분리해 '경인사무소'를 신설(50명 증원)하고, AI·데이터 분석 등 디지털 포렌식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전문 인력 23명도 확충한다. 이번 조직 개편안은 국회 예산 심의를 거쳐 내년 1분기 중 시행될 예정이다.
주 위원장은 "보강된 조직과 인력을 통해 불공정 행위로 생존 기로에 놓인 소상공인의 피해 회복을 신속히 지원하고, 조사받는 기업의 불확실성도 빠르게 해소하겠다"고 강조했다.
min7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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