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트럼프式 협상과 한국式 협상
-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공격적으로 요구하고, 상대를 흔들며, 마지막에 딜을 끌어낸다"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대다수 통상전문가가 평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이다. 이른바 '벼랑 끝 압박'과 '거래의 정치'가 결합된 방식이다.
그는 거래 상대를 심리적으로 몰아붙이며 "이득을 보지 못하면 떠난다"는 식의 메시지를 반복해 왔다. 이는 한미 관세 협상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호관세 최종 발효일(8월1일)을 앞둔 시점에는 협상을 진행 중인 한국 등 주요국에 관세율을 매긴 서한문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러면서 "훌륭한 사람들이 모든 국가와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그냥 서한을 보내는 게 낫다. 서한은 무역 협상의 끝"이라는 말로, 상대국을 압박했다.
또 상대국의 요구에 대해선 프레임을 전환, 더 강경한 압박으로 상대방을 코너로 몰았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관세 인하 요구에 대해 한국의 '불공정 무역'을 문제 삼아 배터리·의약품 등 다른 산업 분야에까지 고율 관세를 엄포하는 식이다.
정부협상단은 이런 트럼프 특유의 '초기 과장 요구'를 정면으로 반박하기보다, 미국 내 산업계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계산을 냉정히 파고들었다.
미국 자동차 업계가 한국산 부품과 배터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2026년 미국에서 치러질 중간선거 국면에서 '고용 안정'이 트럼프에게 더 중요하다는 점을 교묘히 짚었다고 한다.
특히 미중 패권 다툼 속 조선업 재건이 절실한 트럼프에게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이나, 침체한 미국의 제조업 부흥을 위해 '한미 르네상스 파트너십'으로 손을 내민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트럼프는 회담 도중에도 '딜이 아니면 딜이 깨진다'는 식의 언사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정부협상단은 감정적 대응 대신 데이터와 현실적 명분으로 승부를 걸었다. 상대의 강한 압박에 평정심을 유지하며 유연하지만, 원칙을 굽히지 않는 전략으로 맞섰다.
지난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 후속 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 같은 전략이 주요했다.
한국 측 대표로 협상을 주도해 온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탄 에어포스원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의 '문자 협상'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김 장관은 한국 측이 수용 가능한 범위의 '최후통첩'을 보냈고, 이를 받은 러트닉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이번 트럼프 방한에 협상 타결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였기에 김 장관의 이런 문자는 말 그대로 트럼프식 협상 기술에 가까운 '최후통첩'이었던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조차 김 장관을 가리켜 "터프 네고시에이터(강인한 협상가)"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실제로 미국 측은 공항 도착 직전까지 한국 측이 내민 최후통첩에 대해 확답을 미루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이 시작되기 직전 '연간 최대 200억달러 분납' 제안을 수용하며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번 협상의 교훈은 분명하다. 트럼프식 협상은 논리보다 심리전이고, 감정보다 타이밍의 싸움이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끌려가고, 냉정히 맥락을 읽으면 버틸 수 있다. 한국은 트럼프보다 더 트럼프와 같은 협상의 기술로 관세 협상 타결을 이끌었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에서 보여준 한국의 전술은 분명 '선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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