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말 많은 관세협상은 위험하다…비실무진 협상카드 언급 자제해야
'성과예고·공개 낙관' 협상의 가장 큰 적…청신호 꺼지지 않도록
하노이회담의 교훈…지금 필요한 건 조용한 일관성
- 이강 기자
(워싱턴DC=뉴스1) 이강 기자
"외교는 체스가 아니라 포커다. 완벽한 정보가 아닌 계산된 위험의 게임이다."
현실주의 외교의 상징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말했다. 정보가 불완전한 상황에서 확률과 손익을 따져 '위험을 통제하며 판을 읽는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이 맞닥뜨린 대미 관세협상도 다르지 않다. 완벽한 정보는 없고, 통제해야 할 위험은 산더미다.
그러나 관세협상을 두고 '말'이 너무 많다. 특히 워싱턴DC 현장에서 발로 뛰는 실무진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협상 카드'에 대한 성과예고(fueled expectations)나 추측·전망·중계가 앞다퉈 나왔다.
현장은 그럴수록 혼란스러워졌다. 지난 14일부터 워싱턴DC에 방문한 동행기자단은 '새로운 대안', '원화 기반 스와프', '농산물 딜' 등 서울발 보도를 두고 실무진에게 "확인된 정보인가요"를 끊임없이 되물어야 했다.
그러나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조현 외교부장관이 언급한 '새로운 대안'도 현장에서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말한 통화스와프도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라는 큰 틀 속 변수일 뿐이다.
문제는 성과 예고와 공개 낙관(public optimism)이 협상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신호라는 점이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실패는 이를 보여준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역사적 합의 임박'이라는 메시지를 연일 내보냈지만, 정작 막판 북한이 제재 완화 범위를 좁혀 제안하면서 협상 여지가 사라졌다. 당시 CNN은 "공개된 낙관론이 협상 공간을 제한했다"고 분석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용범 정책실장, 김정관 산업통상부장관 등 협상 당사자들이 말을 아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무 관계자들은 "협상은 카드 하나만 틀어져도 실패다. 사인하기 전까지는 무엇도 정확히 말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비대칭 협상에서는 '패'의 중요성이 더 크다. 이번 협상에서도 갑은 미국이다. 우리에게도 조선산업, 반도체 공급망 안정성 등 카드가 있지만 협상 구도는 여전히 불균형하다.
미국이 국내 여론을 모니터링하는 상황에서 일관되지 않은 신호나 불분명한 정보가 나오면 협상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구 부총리는 국정감사 직후 출국해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G20 재무장관회의와 더불어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접촉하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했다.
김 정책실장과, 김 장관도 백악관 예산관리국(OMB)까지 찾아가 조선산업과 투자펀드 구조를 논의하며 협상력을 높이려 애썼다. 그 결과 미국이 전액 현금 투자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신호를 20일 김 장관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청신호가 꺼지지 않도록 더욱 주의해야 할 시점이다.
워싱턴의 테이블 위에는 아직 카드가 남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비당사자들의 섣부른 성과 예측이 아니라, 협상장에 앉은 이들의 일관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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