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환율 합의' 의미는…"환율조작국 지정 불확실성 해소"
美 '정성평가 강화' 방침 속 '환율조작' 압박 카드 사전 차단
"관찰대상국 제외는 별개…수출 생각하면 꼭 좋은 건 아냐"
- 전민 기자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이번 한미 재무당국 간 환율정책 합의는 미국이 '환율조작국'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최대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미국이 최근 환율 정책에 대한 '정성평가' 강화를 시사한 상황에서, 명문화된 합의를 통해 자의적인 판단의 여지를 줄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획재정부와 미국 재무부는 1일 '한미 재무당국간 환율정책 합의'를 발표했다. 이번 합의는 지난 4월 미 정부의 요청으로 환율 분야가 통상협의 의제에 포함된 이후, 관세 협상과는 별도로 양국 재무당국 간의 협의를 통해 마련됐다.
합의문에서 양국은 효과적인 국제수지 조정을 저해하거나 부당한 경쟁우위를 얻기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번 합의가 중요한 이유는 최근 미국의 정책 기조 변화와 맞물려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 6월 환율보고서에서 기존의 3가지 정량적 기준 외에 교역국의 환율 정책과 관행에 대한 분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정성평가 비중을 높여, 수치상 기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환율 조작'을 대표적인 '비관세 부정행위'로 지목하자, 정부 안팎에서는 미국이 관세 협상 압박을 위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하지만 이번에 양국이 '경쟁우위 목적으로 통화가치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구체적인 이행 방안에 합의하면서, 미국이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할 명분은 사실상 사라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합의문은 미국과 환율 정책의 기준을 서로 정한 것"이라며 "이 정도만 지키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합의가 오는 11월 환율보고서에서 관찰대상국 제외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환율조작국 지정은 미국의 정성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지만, 관찰대상국 지정은 3가지 정량 기준 중 2개를 충족하면 자동으로 해당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3대 기준은 △150억 달러 초과 대미 무역 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초과 경상수지 흑자 △GDP 대비 2% 이상 및 8개월 이상 달러 순매수 개입 등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미 흑자와 경상수지 흑자 등 2가지 기준을 충족할 가능성이 커, 이번 합의와 관계없이 관찰대상국 지위가 유지될 수 있다.
역설적으로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되는 것이 우리 경제 전체에 꼭 긍정적인 신호는 아닐 수 있다. 문제가 되는 대미 무역 흑자와 경상수지 흑자는 수출 중심인 우리 경제의 성장세를 반영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된다면, 이는 곧 우리 수출이 부진해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의미가 된다.
정부는 이번 환율 합의가 관세 협상과는 별개로 진행됐다고 설명했지만, 합의문에 포함된 '외환시장 안정(Stability)' 문구는 향후 통화스와프와 같은 유동성 협력을 요구할 근거를 마련해 뒀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최근 미국과 환율 합의를 했던 일본·스위스의 합의문에는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미 관세 협상은 미국이 요구한 3500억 달러 규모의 '현금 직접투자'와 이에 맞선 우리 정부의 '통화스와프' 요구가 맞물려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3500억 달러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4163억 달러)의 84%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로, 정부는 외환시장 충격을 막기 위한 안전판 없이는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필요조건'이라고 강조하며 해결되지 않으면 협상이 나아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은 비기축통화국과 상시 스와프 체결에 부정적인 입장이라 타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min7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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