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AI 강국' 외치며 원전 접고, 구조조정에 노란봉투법 강행

국종환 경제부 부장
국종환 경제부 부장

(서울=뉴스1) 국종환 경제부 부장 = '인공지능(AI) 3대 강국 진입'. 새 정부가 내건 국가 비전이다. 늦었지만 방향은 옳다. 반도체를 넘어 AI가 미래를 좌우할 산업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정부가 전략산업 육성에 전례 없이 빠른 실행력을 보이는 점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을 뒷받침할 '에너지 수급' 같은 현실 과제 앞에선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리고 있다. AI 산업은 막대한 전력을 먹는다. 데이터센터 하나가 소형 도시 한 곳과 맞먹는 전기를 쓴다. 국내 기업들도 이미 '전력 대란'을 우려하며, 데이터센터를 해외로 옮기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2025년 약 8.2TWh에서 2038년 30TWh로 3.7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원자력 발전소 3~4기 분량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글로벌 시장도 비슷하다. 골드만삭스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0년까지 2023년 대비 165% 늘어날 것으로 봤다. 전력 공급 인프라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정부가 말하는 'AI 강국 전략'은 공허한 선언에 그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원전 신규 건설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탈원전은 없다'고 선언하면서도, 노후 원전 수리나 수명 연장에만 기대는 모습이다. 안정적이고 대규모 전력 공급이 가능한 원전을 외면한 채 AI 산업을 키우겠다는 건, 마치 연료 없는 로켓을 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최근 산업 정책 현장에서는 또 다른 모순도 드러났다. 정부는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을 공식화했다. 글로벌 공급 과잉과 저수익 구조를 이유로, 기업들에 올해 말까지 자율 구조조정안을 내라고 데드라인을 줬다. 나프타 분해설비(NCC) 감축, 고부가 제품 전환 등 구체적인 방향까지 제시하며 강도 높은 사업 재편을 압박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 국회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교섭권 확대,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제한 등을 담은 이 법은 산업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6개월 유예를 거쳐 내년 3월부터 시행된다.

한쪽에선 기업에 "더 빨리, 더 과감하게 구조조정하라"고 채찍질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노조의 교섭권을 대폭 강화하는 법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인력 조정이 필수적인 구조조정 국면에서, 법적 리스크는 더 커졌다. 정책 간 충돌이 빚어낸 역설이다.

정부가 추구하는 목표는 명확하다. AI든 산업 재편이든 결국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수단이 목표에 따르지 못하면, 방향은 옳아도 동력은 상실된다. 전력 인프라 없이 AI 산업을 키우겠다는 것과 노사 갈등 완충 장치 없이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것 모두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이다.

정책은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힘을 낼 수 있다. 부처와 정치권이 제각각 따로 움직이며 충돌하는 신호만 보낸다면, 기업도 노동자도 국민도 방향을 잃게 된다. 훗날 "구호만 거창했지, 실행은 엇박자였다"는 평가를 피하려면, 정략이 아닌 현실에 기반한 '정책 일관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jhku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