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에 ‘K-원전’ 美 진출 탄력…한수원·WEC JV는 '숨 고르기'
WEC와 JV 설립 논의는 순연…지재권 분쟁 합의 내용 공개 영향
한미 정상회담 계기 美 원전 협력은 강화…11건 MOU 중 4건 '원전'
-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원자력발전 협력이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한국은 미국에서 대형 원전 4기와 소형모듈원전(SMR) 등이 투입될 11GW(기가와트) 규모의 'AI 캠퍼스' 건설에 참여하기로 했다. 해외 원전의 불모지인 미국 시장에서 ‘K-원전’의 기술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다.
다만 미국 원전산업의 대표 기업인 웨스팅하우스(WEC)와의 직접적인 협력 내용은 이번 회담 성과에서 제외됐다. 최근 한수원과 WEC가 지식재산권 분쟁 해소를 위해 체결한 합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국내에서 '굴욕 계약' 논란이 확산하자 양사는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한수원은 WEC와 함께 세계 원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합작회사(JV) 설립을 추진해왔으나,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진전된 협력 내용을 발표하지 못했다. 양사는 추후 협력 사안을 더욱 구체화해 나갈 것으로 전해졌다.
27일 원전 업계 등에 따르면 한수원과 WEC의 세계 원전 시장 공략을 위한 합작법인(JV) 설립 논의에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일 황주호 한수원 사장이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JV 설립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듯했지만, WEC와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수원은 이번 방미에서 JV 설립 과정에서의 지분율 문제 등 세부적인 내용을 논의하려고 했다"면서 "하지만 결국 양사 간 만남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번 만남이 무산된 배경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최근 국내에서 불거진 양사 간 지식재산권 분쟁 해소를 위한 합의 내용 공개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 간 '비밀유지의무'(NDA)에 관한 내용이 외부에 공개되면서 WEC 측이 한수원과의 논의에 더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지난 1월 한수원과 한국전력은 WEC와 지재권 분쟁 해소에 동의하는 '글로벌 합의문'에 서명했는데, 최근 이 합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국내에서 논란이 일었다.
공개된 내용을 보면 한수원 등 '팀코리아'는 원전 수출 시 1기당 6억 5000만 달러(약 9000억 원)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 계약을 WEC에 제공하고, 1기당 1억 7500만 달러(약 2400억 원)의 기술 사용료를 내는 조항이 담겼다.
또 한국 기업이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원전을 독자 개발해 수출할 경우, WEC의 기술 자립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도 포함됐다.
더 큰 논란은 한수원 등 팀코리아가 북미·유럽·일본·영국·우크라이나 시장에 진출할 수 없다는 조항이었다. 한수원·한전이 신규 원전 수주 활동을 할 수 있는 국가는 △동남아시아(필리핀·베트남)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남아프리카 △북아프리카(모로코·이집트) △남미(브라질·아르헨티나) △요르단 △터키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국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굴욕 협상'이라는 비판이 확산했다.
이에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현안 질의에 출석해 "'불리한'이라는 단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 과정에서 한수원과 WEC와의 JV 설립 추진 사실이 처음 공개됐다.
한수원은 WEC와 세계 원전 시장 공동 공략을 위한 합작법인(JV) 설립 등을 논의해 왔다. WEC의 원천 기술과 한수원의 시공 역량을 결합해,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원전 시장에 공동 진출하겠다는 구상이다.
WEC는 원전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으나 시공 역량이 부족한 반면, 한수원과 팀코리아는 뛰어난 시공 능력과 기자재 공급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상호 ‘윈-윈’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다.
미국 원전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현지 합작회사 설립이 필수 요건이다. 미국에서 원전을 건설하거나 운영하려면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하는데, 외국 기업 단독으로는 해당 라이선스를 받을 수 없다. 지분투자를 통한 JV 설립의 경우에는 심의를 거쳐 진출이 가능하다.
WEC와의 개별 협력 사안과는 별개로, 'K-원전'의 미국 원전 시장 진출을 위한 분위기는 점차 조성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등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전날 이재명 대통령 임석 하에 미국 워싱턴DC 윌러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행사에서 조선·원자력·항공·액화천연가스(LNG)·핵심광물 분야에서 한미 양국 기업 간 11건의 계약 및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중 원전 분야 MOU가 4건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세부 내용을 보면 한수원 등 팀코리아는 미국의 대형 원전 4기와 SMR 등이 투입되는 11GW(기가와트) 규모의 'AI 캠퍼스' 건설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트럼프 정부 1기 때 에너지 장관을 지낸 릭 페리(Rick Perry)가 공동 설립한 페르미 아메리카(Fermi America)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페르미 아메리카는 지난 21일, 사업에 사용될 원자로로 AP1000을 선정하며 웨스팅하우스와의 협력을 공식 발표한 바 있다.
미국 텍사스주 아마릴로 외곽의 약 2335만㎡(약 707만 평) 부지에 11GW 규모의 민간 전력망 캠퍼스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AP1000 대형 원전 4기(4GW) △SMR(2GW) △가스복합화력(4GW) △태양광 및 배터리에너지저장시스템(1GW) 등이 포함된다. 이 전력은 초대형 하이퍼스케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공급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대형 원전뿐만 아니라 SMR 사업에도 참여하는 MOU를 체결했다. 앞서 현대건설도 지난달 31일 페르미 아메리카와 사업의 기획, 설계, 설계·조달·시공(EPC) 계약 추진 등에 협력하는 MOU를 맺은 바 있다.
팀코리아는 미국이 추진 중인 핵연료 공급망 복원 작업에도 참여한다. 한수원은 미국 우라늄 농축 공급사인 센트러스의 우라늄 농축 설비 구축 투자에 공동 참여하기로 했다. 최근 계약을 유동적인 조건부 계약에서 물량 확정 방식으로 변경하면서 핵연료 물량을 추가 확보했다.
또 한수원과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센트러스의 미국 내 농축 설비 구축에 투자하고 농축 사업에 협력하는 MOU를 체결했다. 이와 함께 한수원은 두산에너빌리티, 미국 아마존, 원전 전문 기업 엑스에너지(X-energy)와 손잡고 4세대 SMR 'Xe-100'과 전용 연료(TRISO-X)의 상용화를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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