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따라 출렁인 韓경제…에너지 자립 없인 진통제만 반복

중동 불안에 '성장률 -0.4%p' 위협…러·우 전쟁 등 수차례 반복
정부 대응 대부분 단기처방 격…"산업 구조전환 등 근본대책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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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12일 동안 이어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충돌로 국제유가가 출렁이자, 에너지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가 다시 한번 유가 충격에 노출됐다.

전문가들은 이제 세금 감면, 비축유 방출을 넘어 유가 충격의 반복을 완화할 중장기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 정세 불안으로 유가가 등락할 때마다 한국 경제는 반복해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지난 23일 기준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전일 대비 3.9% 상승하면서 배럴당 80달러를 넘겼다.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이어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하며 유가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확대된 영향이었다.

급기야 지난 22일 이란 의회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승인하면서 유가 급등 공포가 세계적으로 확산했다.

하루가 지나, 이란과 이스라엘 간 휴전이 발효되면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70달러 아래로 내려왔다. 긴장 완화 지속 시 유가는 이달 초 저점 수준으로 복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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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 러·우 전쟁 → 12일 전쟁…유가 위협 반복

문제는 유가 충격이 한국 경제 역사상 수차례 반복돼 왔다는 점이다. 가깝게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다음으로는 2011년 아랍의 봄 등 국제 정세 변동에 따라 고유가 현상은 약 10년 주기로 재발했고, 매번 한국 경제에 타격을 입혔다.

이번 '12일 전쟁' 때도 유가 상승으로 인한 경기 둔화 공포가 확산했다. 앞서 JP모건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경우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그보다 낮은 배럴당 95달러만 상승해도,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0.42%포인트(p), 내년 0.49%p 하락한다고 전망했다.

반복되는 유가 충격의 배경에는 한국 원유 수입이 중동의 지정학 위험에 특히 취약하다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원유 수입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한다. 이에 중동산 원유의 99%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 조짐을 보일 때마다 한국 경제 우려는 고조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우리 산업계는 크게 긴장했다. 전날 미국과 이란 사이 전면전 가능성이 제기되자,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국회로 제출한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필요하면 중동 사태 대비 예산을 담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치와 산업계의 긴장은 설레발이 아니다. 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됐다면 국내 제조업 생산 비용은 최대 5.19% 치솟았을 것으로 추산됐다. 유가가 단 10% 올라도 제조업 평균 비용은 0.67% 오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모두 기업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가격 경쟁력을 낮추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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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처방 외 다변화-산업 전환 등 '중장기 대응' 강조

그러나 정부가 보유한 대응 수단은 대부분 충격을 상쇄하는 단기 처방에 집중돼 있다. 유류세 인하, 전기·가스요금 동결, 에너지 바우처 확대, 경유비 보조, 중소기업 대상 에너지 대출 등이 그간 정부가 시행해 온 유가 대책이다.

이 같은 단기 처방은 가계와 기업이 당장에 겪을 고유가 고통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나, 유가 충격의 재발을 해소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중장기 해법에 집중할 것을 조언했다. 이소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23년 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따른 유가 변동과 국내 산업 영향을 다룬 보고서에서 "유가 변화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영향을 받는 산업에 초점을 맞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위원은 "화학산업, 1차 금속산업, 석유정제산업같이 유가 상승에 큰 비용 상승이 동반되는 산업에 추가 정책 지원으로 충격 확산을 막을 필요가 있고, 교역 조건 악화 가능성에 대비해 수출 시장 경쟁력을 향상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수입 에너지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원유는 특성상 수입선 다변화가 어렵기에 대체 에너지나 재생 에너지 개발과 상용화 연구개발(R&D)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계 내부적으로도 생산 과정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자구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서비스업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실제로 한국은행 연구 결과, 국내에서 제조업 비중이 높은 지역일수록 생산·고용이 유가 충격에 취약하며, 해당 충격은 1년을 넘는 기간 지속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미국, 유럽 등지에서 에너지 가격을 정치적으로 관리하려는 조짐이 강해지고 있어, 국가적인 에너지 자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무현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상품 교역 환경의 불확실성은 제조업 중심 수출 구조를 지닌 경제에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서비스 산업을 새 수출 동력으로 삼아 리스크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영진 한은 투입산출팀 과장은 "교역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IT, 콘텐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수출 확대는 우리 경제에 새로운 기회"라고 지적했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