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스럽네’ 자기모순 덫에 걸린 고위직 후보자들
그러나 이 형식절차는 법적 잣대보다 더 무서운 힘을 발휘하면서 중량급 인사들을 속속 낙마시키고 있다.
경력이나 전문성에 대한 논란은 둘째치고 발언이나 행적이 오락가락하는 자기모순적인 처신이 후보자의 발목을 잡으면서 사퇴 압박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대표적인 케이스로 그때그때 제각각인 꼼수 처신 탓에 낙마 대열에 가세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공정위장· 경제부총리· 국방장관 내정자 ‘언행 엇박자’
민주통합당 김영주 의원은 20일 "한 공정위원장 후보자가 약 1억9700만원의 세금을 정상적으로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공개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한 후보자는 2002~2009년의 8년간 상습적으로 소득세를 모른척하다 국세청에 적발돼, 2008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종합소득세 1억9700만 원을 추징당했다.
조세 전문가로 알려진 한 내정자가 정작 자신의 세금을 축소 또는 지연 납부한 것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적절치 못한 처신이라는게 공정위 안팎의 지적이다.
한 후보자는 최근 연금·퇴직세제 개편에 대한 의견 제출 등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으로서 금융세제 선진화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의 모범납세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는 지난 3일 납세자의 날 행사가 끝난뒤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이화여대에서) 세법 강의를 할 때 늘 첫마디로 하는 말이 조세는 국가를 유지하는데 근간이 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었다"며 "모든 국민이 자기의 능력에 맞춰서 성실히 납세의무를 이행해야 국가가 건전하게 유지될수 있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23년간 기업들의 변호를 맡은 로펌 변호사 경력과 100억원이 넘는 재산을 모은 도덕성 시비에 이어 자질 문제까지 겹치면서 인사청문회를 일주일 앞두고 야권의 지명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후보자도 그동안 보여준 언행들과 청문회장에서의 발언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현 후보자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SSM 진입규제의 찬반여부를 묻는 질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재직시 SSM 규제에 거부반응을 보였었다.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대기업 횡포를 손보는 조치에 대해선 "소수 주주에 의한 횡포를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또한 과거 발언과 다른 것이라는 추궁에는 "재벌 나름대로 경제성장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서 말한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아 청문회장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나아가 현 후보자는 2004년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장 재직 시절 "성매매법, 접대비상한제 탓에 국내소비는 줄어들고 해외소비가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였다"는 발언을 일간지 칼럼에 기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제수장으로서의 경제 인식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비난까지 떠안았다.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도 2010년 천안함 사건 애도기간 중 군 골프장을 출입했다는 의혹이 도마위에 올랐다. 2008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서 예편한 탓에 당시에는 민간인 신분이었지만 군 고위인사 출신이 국가가 애도기간으로 정한 시기에 골프장을 출입한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더구나 김 후보자는 대통령직 인수위가 '확고한 안보관'을 인선 배경으로 내세웠을 정도로 안보를 중시하는 인물로 대북정책에 있어선 비둘기파(대화파)라기보다는 안보를 중시하는 매파(강경파)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도 자기모순의 함정에 걸려 낙마를 자초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7년 한나라당 장 모 의원에게 소액의 정치자금을 후원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그에 앞서 공무원의 기부를 제한한 국가공무원법 제65조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해선 `합헌' 의견을 냈었다.
◇자기모순 장본인은 박 대통령?
지난달 김용준 전 총리 내정자가 부동산투기와 아들 병역 의혹으로 퇴진하자 박 대통령 당선인은 신상털기식 여론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불만을 떠뜨렸다. 또한 비슷한 시기 인사청문회에서 사실상 부적격으로 판명난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에 대해서는 국회 표결을 우회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선인 스스로가 과거 국가 주요 요직 인사의 경우 도덕성 위주의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누차례 밝혔다는 점에서 이중 잣대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때인 2005년 4월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을 확대하고 청문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이 헌재소장 내정자에 대한 박 당선인의 시각은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 때와는 정반대여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던 박 당선인은 후보 지명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전 후보자에 대한 국회 표결을 끝내 반대하면서 자진 사퇴를 이끌어냈다.
요즘 여권이 머뜩하게 바라보는 인사청문회 제도를 만든 쪽은 다름아닌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다.
1999년 15대 국회 막바지에 구성된 정치개혁특위에서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는 국회의 동의나 선출이 필요한 고위공직자로 청문회 대상을 제한하려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국가정보원장과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빅4'까지 청문회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2000년 16회 국회때 인사청문회법을 통과시킨데 이어 김대중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에는 장상, 장대환 국무총리 서리를 잇달아 낙마시키며 정국 주도권을 거머쥐었다.
andrew@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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