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트라우마..엔저 장기화에도 기업 환변동보험 기피

올들어 무보 환변동보험 실적 582억원 불과

2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원엔 환율이 899.49를 나타내고 있다. 2015.5.26/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이동희 기자 = #선박기자재, 발전설비 등 소재주강을 생산·판매하는 A사는 계속되는 엔저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수출 규모가 300만달러까지 늘어나 매출액이 최근 5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했지만 기쁨도 잠시 엔저의 여파가 회사를 뒤덮고 있다.

A사 관계자는 "해외 시장에서 엔저로 가격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며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대일 수출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100엔당 800원대 시대를 맞이하면서 국내 수출 중소기업이 휘청거리고 있다. 이에 정부는 엔저 장기화의 대책으로 환변동보험 등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수출 중소기업의 이용률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중소기업들이 과거 키코(KIKO·Knock In Knock Out) 사태를 떠올리며 가입을 꺼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31일 무역보험공사에 따르면 올해 엔화의 환변동보험 지원 실적은 582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기간(699억원)보다 100억원 이상 줄었다.

무보 관계자는 "올 3~4월 들어 원엔 환율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900원선에 근접하자 환율이 저점이라는 인식과 함께 반등 기대심리로 환헤지 수요가 감소했다"며 "5월 들어 다시 엔화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청약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환변동보험은 수출입시 달러나 엔화 등 외화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차손익을 제거해 환율변동에 따른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상품이다.

정부의 수출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포함됐던 지원방안으로 정부는 엔저 장기화에 대응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수요자인 수출 중소기업은 정부 설명에 시큰둥한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잘 몰라서 가입을 못하는 사례도 있겠지만 과거 키코 사태 이후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고해도 중소기업이 가입을 꺼린다"고 말했다.

키코는 기업과 은행이 환율 상·하단을 정해 놓고 그 범위 내에서 지정된 환율로 외화를 거래하는 상품을 말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당시 중소기업들은 은행 측이 수출에 따른 환율변동을 헷지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제시했던 키코에 가입해 안정성을 보장받고자 했다.

하지만 환율이 상·하단을 벗어나면서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은 큰 손해를 입었다. 당시 중소기업들은 은행을 상대로 '불완전판매'라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은 결국 은행 의 손을 들어줬다.

환변동보험을 판매하고 있는 무보가 과거 키코 사태와 달리 손익의 비대칭성이 없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업계는 냉랭한 게 사실이다.

수출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환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것도 맞지만 (환변동보험에 가입하면) 환율에 따른 이익을 일정 부분 돌려줘야하는 점도 역시 환변동보험 가입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계속 가입을 독려하겠다는 입장이다. 다음 달 발표될 수출 활성화 대책에도 환변동보험 관련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관계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중소기업들이 환변동보험을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라며 "환율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환변동보험이 환율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

현재 무보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해 보험료를 10~15% 할인해주고 있고 대일 수출기업의 경우 50%의 특별할인을 추가로 적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저가 더 이상 한국 경제의 변수가 아닌 상수라며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장은 "일본의 공격적인 수출단가 인하가 예상돼 엔저 피해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며 "지역별 품목별 맞춤형 수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yagooj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