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APR1400 2기 건설 추진…한국 원전, 미국 본토 진출 길 열려

美 시장 진입로 확보…"원전 종주국 시장 진출 기회"
부지·용수·송전망·공사비가 사업성 좌우…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도 추진

이날 울산 울주군 서생면 공사 중인 새울 3, 4호기(APR1400) 모습. 2026.1.26 ⓒ 뉴스1 윤일지 기자

(세종=뉴스1) 김승준 조용훈 김우진 기자 = 한국형 원전 APR1400이 '원전 종주국' 미국 본토에 진출할 길이 열렸다. 한미 양국이 대미 전략투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APR1400 2기를 포함한 대형 원전 8기를 미국에 건설하는 내용의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기본 틀)'를 추진하기로 하면서다.

아직 개별 프로젝트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향후 사업별 상업적 합리성 검토와 국내 절차도 넘어야 한다. 다만 지난해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 간 타협협정(SA)으로 사실상 막혀 있던 한국형 원전의 미국 시장 진출 통로를 새로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국이 미국 웨스팅하우스 기술로 첫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 건설에 나선 지 반세기 넘게 지나, 자체 개발한 원전 노형을 미국 본토에 건설할 기회를 확보한 셈이다.

이번 협상을 이끈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이번 원전 프레임워크의 의미를 미국 시장 진입에서 찾았다.

김 장관은 사전브리핑에서 "한국은 미국이라는 시장, 원전 종주국으로서 자존심도 강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미국에서 성공 사례가 된다면 앞으로 한미 기업 간 상생 협력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데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韓 APR1400 2기·美 AP1000 6기…원전에 최대 1200억 달러 투입

1일 정부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전략투자 자금 최대 1200억 달러를 활용해 미국에 총 8기의 대형 원전을 건설하는 내용의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를 추진하기로 했다.

8기 가운데 2기는 한국형 APR1400, 나머지 6기는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으로 구성한다. AP1000 2기를 먼저 건설한 뒤 APR1400과 AP1000을 각각 2기씩 추진하고, 이후 AP1000 2기를 추가하는 순서다.

프레임워크에는 한미 양국 정부와 웨스팅하우스, 한전, 한수원이 참여한다. 총 재원 1200억 달러 가운데 약 1000억 달러는 건설비, 나머지 200억 달러는 공사비 초과 등 상황 변동에 대비한 예비비로 책정됐다.

원전 사업에 필요한 원자로 용기와 증기발생기 등 장주기 기자재의 제작 기간을 고려해 상업적 합리성 검토와 국회 보고 등 국내 절차를 충족한다는 전제 아래 연말까지 최대 100억 달러를 먼저 투입하는 방안도 협의했다.

다만 프레임워크 체결이 곧바로 원전 8기 건설 확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한미 원전 협력의 큰 틀을 정한 단계다.

지재권 분쟁에 막혔던 북미 시장…프레임워크로 진입로 마련

이번 프레임워크가 미국 진출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2025년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체결한 SA 때문이다.

양측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 과정에서 APR 계열 원전의 지식재산권을 놓고 장기간 분쟁을 벌이다 지난해 1월 글로벌 합의에 도달했다. 웨스팅하우스는 당시 한전·한수원과 모든 법적 분쟁을 끝내기로 했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합의 조건은 비공개에 부쳤다.

이후 알려진 합의 내용에는 사실상 양측의 해외 원전 시장을 나누는 조건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전·한수원은 북미를 비롯해 유럽연합(EU·체코 제외), 영국, 일본, 우크라이나 등의 신규 원전 사업에 독자적으로 참여하는 데 제약을 받고, 동남아와 중동·아프리카·남미 등의 일부 시장을 중심으로 수주 활동을 하는 구조다.

이번에는 기업 간 협력 논의보다 한 단계 나아가 양국 정부까지 참여하는 프레임워크에 미국 내 APR1400 2기 건설을 명시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이를 실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기존 SA 수정이 필요하다.

김 장관은 "SA의 개정 주체는 한전과 한수원, 웨스팅하우스"라며 "이번 프레임워크에는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까지 참여하고, 대미 투자 자금을 활용해 미국에 APR1400 2기를 넣겠다는 내용으로 SA를 개정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렇게 프레임워크까지 만들어 놓고 SA를 개정하지 않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APR1400의 미국 건설이 현실화하면 국내 원전 공급망의 미국 시장 진입 효과도 기대된다.

한국형 APR1400뿐 아니라 웨스팅하우스 AP1000 6기 건설에도 한국 시공사와 기자재 업체들이 참여하는 구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웨스팅하우스는 설계상의 지식재산권(IP)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원전을 구현할 EPC 기업과 기자재 공급업체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한국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APR1400이 진출하는 시장은 우리가 가져가고 AP1000이 강한 서유럽 등의 시장에서는 우리 EPC 기업과 기자재 업체가 공급망으로 참여할 수 있다"며 "양쪽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 전략적투자의 운영 및 관리를 위한 특별법'에 따른 대미투자 사전보고를 하고 있다. 2026.9.22 ⓒ 뉴스1 황기선 기자

다만 미국 시장 진입의 길을 열었다고 곧바로 APR1400 2기 건설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관문은 개별 원전 사업의 상업적 합리성이다. 원전은 부지 특성에 따라 용수·송전망·공사비 등 사업성 판단이 크게 달라지는 만큼 정부는 미국 측에서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제시되면 사업별로 경제성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김 장관은 "프레임워크는 총론에 합의한 것이고 이제 각론인 개별 프로젝트가 와야 한다"며 "지반이 어떻게 구성됐는지, 원전을 지을 만한 곳인지부터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한국 기업의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도 함께 추진한다. 현재 검토하는 지분율은 5~10% 수준으로 최종 비율과 투자 조건은 향후 협상을 통해 정한다.

지분 인수는 단순한 재무투자보다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과거 지식재산권 분쟁의 상대방에서 미국과 제3국 원전사업의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파트너로 관계를 전환하는 장치라는 의미도 있다.

김 장관은 "웨스팅하우스 지분에는 한전과 한수원뿐 아니라 국내 민간기업도 참여한다"며 "한국 기업은 미국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원전 시장을 보고 전략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seungjun24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