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성號 통상교섭본부 출범…대미 투자·301조 관세 대응 '동시 시험대'

엿새 만에 통상수장 공백 메워, 전략투자 협의·관세 대응 연속성
"1호 사업 발표 대응 총력"…반도체·조선 경쟁력 협상 카드로

박정성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12동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산업통상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6.8.24 ⓒ 뉴스1

(세종=뉴스1) 조용훈 기자 = 박정성 신임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취임하면서 대미 전략투자 이행과 미국 무역법 301조 관세 대응이 통상당국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가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직권면직한 지 엿새 만에 후임 인선을 마무리한 것은 관세·투자 협상과 비관세장벽 대응을 공백 없이 관리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의 내용과 발표 시기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투자 이행과 관세·비관세장벽 현안을 어떻게 연계·관리하느냐가 박정성호 통상본부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대미 투자, '1호 사업'보다 국익 중심 이행 설계

25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박정성 통상교섭본부장은 전날 취임식에서 한미 간 전략적 투자 이행을 "양국 관계에서 가장 큰 도전이자 기회"라고 규정했다. 그는 "전략적 투자 협의를 통해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버금가는 새로운 양자 협력의 판을 형성할 것"이라며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박 본부장이 대미 투자와 관세 협상 실무를 총괄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복잡한 통상 현안을 풀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세계무역기구(WTO) 투자원활화 협상 공동의장과 대미 관세협상 태스크포스(TF) 실무수석대표를 지낸 만큼, 전략투자 이행과 관세·비관세장벽 대응을 동시에 이끌게 됐다.

대미 전략투자 1호 프로젝트의 대상과 규모, 추진 방식 등 구체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산업통상부는 한미 간 전략투자 프로젝트 협의를 이어가고 있으나, 협상 중인 사안의 특성상 세부 논의는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미 외교관계와 국익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구체적인 협의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반도체를 1호 후보 프로젝트로 논의 중이라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의 구체안을 조율하는 과정에서는 투자 대상뿐 아니라 사업성, 재원 조달,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 등이 함께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협상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쟁점들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기 평택항에 수출용 컨테이너가 세워져 있는 모습. ⓒ 뉴스1 김성진 기자
301조·비관세장벽 병행 대응…관세 리스크 관리

대미 투자와 함께 미국의 무역법 301조 조사, 비관세장벽 이슈도 풀어야 할 현안이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이 외국 정부의 불공정 무역 관행이 자국 교역에 피해를 준다고 판단할 경우 조사 뒤 관세 등 제재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미국은 강제노동과 관련한 301조 조치를 통해 한국산 제품에 최소 12.5% 관세를 부과했다. 또 과잉생산을 이유로 한 별도 조사도 진행 중이어서 결과에 따라 추가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투자와 관세·비관세장벽은 공식적으로 별개 의제지만 실제 협상에서는 서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이 관세를 산업정책과 공급망 재편 수단으로 활용하는 상황에서, 대미 투자 이행이 예측 가능한 통상 환경을 조성하고 한국 기업의 시장 접근 여건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지난 30일 인천국제공항 대한항공 화물터미널에서 관계자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를 홍콩으로 향하는 항공기에 탑재하고 있다. (공동취재) ⓒ 뉴스1 김성진 기자
반도체·원전·조선, 전략산업을 협상 지렛대로

박 본부장은 WTO 중심의 개방·효율·비차별 원칙이 지배한 시대가 저물고 경제안보 중심의 새 통상질서가 형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체불가 산업을 가진 나라는 선택받지만, 대체가능한 산업만을 가진 나라는 선택을 강요받는다"고 강조했다.

반도체·원전·조선은 한국이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대표 분야다. 미국 등 우방국의 공급망 협력 요구가 시장 접근 확대와 국제표준 선점, 공동 프로젝트 참여 등 한국 측의 반대급부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주요 협상 변수다. 조선 협력은 투자뿐 아니라 기자재 공급과 금융, 숙련인력, 안보 수요까지 맞물린 만큼 정부와 업계의 공동 전략이 필요하다.

박 본부장이 "통상정책은 통상교섭본부 혼자 추는 춤이 아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미 투자와 공급망, 비관세장벽은 산업통상부만으로 풀기 어렵다. 관계부처와 기업, 현장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사전에 조율해야 대외 협상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울 수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지난 5월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에서 열린 한-미 조선 파트너십 이니셔티브 양해각서(MOU) 체결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월리엄 키밋 상무부 국제무역담당 차관, 러트닉 장관, 김 장관, 박정성 산업통상부 통상차관보. (산업통상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5.9 ⓒ 뉴스1
다변화·공급망, 장기 과제

대미 현안의 긴급성이 크지만 통상정책이 미국 변수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박 본부장이 제시한 기존 FTA 고도화와 신흥지역 경제협력망 구축은 수출시장과 자원 조달처를 함께 넓히는 전략이다. 식량·핵심광물 역시 우호국 협력과 장기 구매계약, 투자·비축을 결합해 공급망 충격에 대비해야 할 경제안보 의제로 꼽힌다.

결국 박정성호 통상본부의 첫 무대는 대미 전략투자와 301조 관세 대응이 될 전망이다. 투자 협의가 어떤 사업과 조건으로 구체화될지, 관세·비관세장벽 협상에서 한국이 어느 수준의 실익을 확보할지에 따라 '경제안보 통상'의 성패도 가늠될 것으로 보인다. 박 본부장이 예고한 한미 FTA에 버금가는 새 협력의 판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joyonghu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