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에 'SMR 러브콜' 보낸 빌 게이츠…테라파워 vs K-SMR 경쟁력은
테라파워 '나트륨', 열저장장치로 출력 유연성 확보…美 첫 호기 건설
K-SMR, 경수로 기반 운전·인허가 강점…韓 공급망 참여로 경험 확대
- 김승준 기자
(세종=뉴스1) 김승준 기자 = 빌 게이츠 테라파워 이사회 의장이 방한 기간 한국 기업들과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 사업 협력을 구체화하면서, 한국 원전업계와 테라파워의 협력 범위가 공급망 전반으로 넓어지고 있다.
테라파워는 지난 14일 SK이노베이션과 차세대 비경수형 '나트륨 SMR'의 글로벌 사업 확대 및 국내 적용을 위한 주요 조건 합의서를 체결했다. HD현대와는 원자로 용기를 연간 2~3기 공급할 수 있는 생산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테라파워가 첫 호기 건설에 이어 한국 제조·건설 기업을 공급망에 편입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나트륨 SMR의 글로벌 사업 확대 과정에서 제조·설계·건설 등의 경험을 쌓을 기회를 얻게 됐다. 한국이 독자 개발 중인 경수로형 i-SMR과 테라파워의 비경수형 나트륨이 향후 시장에서 경쟁하면서도, 차세대 원전 시장을 키우는 협력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수력원자력도 올해 1월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테라파워 지분 일부를 인수하며 투자자로 합류했다. 한국 원전업계가 경수로형 SMR과 차세대 비경수형 원전에 동시에 참여하면서 기술·사업 경험을 넓히는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최성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한국원자력학회장)는 "한국형 SMR과 테라파워 나트륨이 향후 SMR 시장에서 경쟁 관계도 있겠지만, 서로 시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성공하는 SMR이 여러 개가 나오는 것이 원자력을 전 세계 국가들이 활용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테라파워의 '나트륨 SMR'은 현재 차세대 원자로 경쟁에서 상용화에 가장 앞선 기술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테라파워는 지난 3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첫 나트륨 원전의 건설허가를 받은 데 이어 4월 실제 건설에 착수했다.
테라파워가 이번 SMR을 나트륨으로 이름 지은 것은 냉각재로 액체 나트륨(소듐)을 활용하는 '소듐냉각고속로(SFR)' 형태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의 대부분은 냉각재로 물을 사용한다. 반면 SFR은 액체 소듐을 냉각재로 쓰는데, 소듐은 물보다 높은 비등점과 우수한 열전달 특성을 바탕으로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열을 효과적으로 제거·수송할 수 있다.
나트륨의 핵심적인 특징은 원자로와 에너지저장장치를 결합했다는 점이다. 테라파워의 나트륨은 원자로에서 회수한 열을 용융염 기반 에너지 저장설비에 저장한다. 전력 수요가 낮을 때는 원자로의 열을 저장해 두고, 수요가 급증하거나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줄어들 때 저장된 열을 활용해 증기를 추가 생산한다.
이에 따라 원자로의 기본 출력은 345메가와트(㎿)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필요할 때 발전기 출력은 최대 500㎿까지 높일 수 있다. 원자로 자체의 출력을 크게 조절하지 않고도 전력 수요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 계통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나트륨의 주요 경쟁력으로 꼽힌다.
현재 한국에서 개발 중인 i-SMR도 각 모듈의 출력을 조절하는 부하추종 운전을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량 변동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있다. 다만 나트륨 SMR은 원자로의 출력을 크게 바꾸지 않고도 용융염 열저장 설비를 통해 발전기 출력을 조정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나트륨이 원자로와 열저장장치를 결합해 전력 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강점이라면, i-SMR은 장기간 건설·운영 경험이 축적된 가압경수로(PWR) 기술을 기반으로 기존 경수로의 안전 해석·품질보증·운전·정비 경험과 일부 규제 기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경쟁력으로 꼽힌다.
원자력 수출 시장에서는 단순한 설계 성능뿐 아니라 도입국 규제기관이 안전성을 검증하고 장기간 운전을 관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인허가 경험과 운영 생태계도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된다.
반면 SFR은 고속중성자와 액체 소듐 냉각재를 사용하는 비경수형 원자로다. 나트륨은 차세대 비경수형 원전 가운데 인허가와 첫 호기 건설에서 선도 사례로 꼽히지만, 소듐의 물·공기 반응성에 따른 누설·화재 관리, 불투명한 냉각재 환경에서의 검사·정비, 고속로용 안전기준 등 추가적인 설계·규제 검증이 필요하다.
연료 공급망도 과제다. 나트륨은 기존 경수로 연료와 다른 고순도 저농축우라늄(HALEU) 기반 금속연료를 사용한다. 따라서 SFR의 기술적 혁신성만으로 상용화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규제·연료·공급망·운영 생태계를 함께 구축하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
글로벌 차세대 원전 시장에서는 i-SMR이 경수로 기반의 운전·인허가 경험을, 테라파워의 나트륨이 열에너지저장장치를 활용한 출력 유연성을 강점으로 제시하며 각기 다른 수요처를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두 노형이 일부 시장에서는 경쟁하더라도, 초기 도입 사례의 축적과 공급망 활성화, 규제·인허가 경험의 확산을 통해 차세대 원전 시장 전반의 성장에는 상호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제환 원자력연구원 4세대 원자로 기술개발부장은 "차세대 SMR들은 경쟁자인 동시에 협력자"라며 "수주 경쟁을 벌일 정도로 시장이 성장하기까지는 하나의 SMR이 독립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빌 게이츠 테라파워 의장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한국에 와서 협력을 논의한 것도, 이런 점에서 한국과 협력하면 (공급망 구축 등) 시간을 앞당기고, 저렴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동시에 우리나라는 이러한 공급망 협력을 통해 차세대 원전의 산업 기반과 사업 수행 경험을 먼저 축적할 수 있어, 양측이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도 i-SMR을 넘어 소듐냉각고속로(SFR), 고온가스로 등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원자력연구원은 1997년부터 약 30년간 SFR 연구를 수행하며 기술 역량을 축적해 왔다. SFR 안전성을 종합 검증하는 시험시설 '스텔라'(STELLA)의 설계·제작 노하우와 관련 지식재산권이 테라파워에 이전된 것도 이러한 연구 기반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환 부장은 "테라파워의 소듐냉각고속로는 미국에서 건설 허가를 확보해 SFR 상용화 경쟁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며 "이번 협력으로 한국 공급망에 SFR 설계·제조·안전 검증 경험이 축적되면 국내 차세대 원전 산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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