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EU 겨눴던 '美 301조'…쿠팡 사태, 韓 통상 역량 시험대
USTR, 3월 조사 개시 여부 결정…정부 "美 차별 아냐" 이슈 확대 경계
USTR 판단 앞두고 외교·통상 셈법 복잡한 정부…대응 전략 '고심'
- 나혜윤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미국이 과거 중국과 유럽연합(EU)을 상대로 실제 관세 부과까지 이어간 무역법 301조가 이번엔 '쿠팡 사태'와 맞물려 거론되고 있다. 중국·EU 사례처럼 조사 개시 자체만으로도 강한 압박 수단으로 작동해온 만큼, 이번 사안은 한국 정부의 통상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정부는 쿠팡에 대한 대응이 특정 기업을 겨냥한 조치가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른 동일 기준의 집행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조사 개시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45일의 정치적 시계가 가동되면서, 향후 전개에 따라 사안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5일 외신에 따르면 쿠팡 지분을 보유한 미국 투자회사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한국 정부가 쿠팡을 차별적으로 대우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USTR에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와 무역 구제 조치를 요청했다. 이들은 동시에 한미 FTA상의 공정·공평 대우 의무와 비차별 원칙 위반 등을 주장하며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의 전 단계인 중재 의향서(notice of intent)를 제출하는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투자사들은 지난해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한국 당국이 범정부 차원의 강도 높은 대응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노동·금융·관세 등 개인정보 사안과 직접적 연관성이 낮은 분야까지 압박이 확대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 가치가 훼손됐으며, 실제로 쿠팡 주가가 개인정보 유출 사실 공개 이후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의 정책이나 관행이 미국의 무역을 제한하거나 불공정하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수입 제한 등 보복 조치를 허용하는 미국 통상법상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다.
대표적 사례는 중국이다. 미국은 2018년 중국의 기술 이전 강요와 지식재산권 침해를 문제 삼아 301조 조사를 개시했고, 이후 수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미·중 무역전쟁으로 이어졌다.
EU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은 프랑스 등 EU 국가들의 디지털세 도입을 문제 삼아 301조 조사를 진행했고, 관세 부과 가능성을 앞세워 정책 수정 압박에 나섰다. 또 에어버스 항공기 보조금 분쟁에서는 301조 절차를 통해 EU산 항공기와 농산물 등에 실제 보복 관세를 부과한 전례도 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301조는 조사 개시만으로도 강한 외교·통상적 메시지가 된다"며 "상대국 입장에서는 관리해야 할 리스크 자체가 크게 확대된다"고 평가한다. 특히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USTR이 이를 국내 기업 보호 명분으로 활용할 경우, 사안은 개별 기업 문제를 넘어 한미 통상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미국 정부에도 우리 정부의 입장과 상황 설명은 충분히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미국 내 검토 과정과 정치적 판단에 따라 사안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우리 정부로서도) 대응 부분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중국이나 EU와 달리 301조에 따른 본격적인 보복 조치를 당한 전례는 없다. 한미 FTA 체제와 전략적 동맹 관계를 감안할 때, 한국을 대상으로 301조가 실제 발동될 가능성은 매우 낮게 평가돼 왔다. 다만 철강, 자동차, 환율 문제 등을 둘러싸고 301조 검토나 압박 카드가 거론된 적은 반복돼 왔으며, 이번 쿠팡 사안은 투자자들이 직접 통상법 절차를 가동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USTR은 청원 접수 후 45일 내에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늦어도 3월 초중순까지 쿠팡 사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사 개시 자체가 가져올 외교·통상적 파장을 감안할 때, 한국 정부로서는 조사 착수를 사전에 차단하거나, 최소한 사안을 통상·외교 이슈로 확대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조 연구실장은 "만약 절차상 (한미간) 조사가 개시된다면 (법 진행 절차에 그치는) 단순 오해였다는 점, 미 기업을 차별하거나 의도적으로 불이익을 준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할 여지도 있다"면서도 "다만 현재로서는 USTR의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한국 정부가 국내 규제의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동시에, 한미 동맹의 틀 안에서 통상 마찰을 잠재울 수 있는 고도의 정치적 수사와 협상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freshness410@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