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풀리는 '원자력 족쇄'…핵연료 자립 첫걸음, 과제는 여전

'일회용' 핵연료 재활용 가능…핵연료 활용 효율 높인다
美 행정부 지지 확보…협정 발효 위해 의회·국제사회·국내 설득 필요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팩트시트 타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5.11.14/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세종=뉴스1) 김승준 기자 = 한국의 핵연료 자립을 가로막아온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가능성이 열리면서 핵연료 수급 안정성과 사용후핵연료 관리 효율성 개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기까지는 미국 의회 승인과 국제사회 검증, 국내 수용성 문제 등 여러 관문이 남아 있어 실제 변화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협정 개정 첫 관문 넘어…핵연료 자립 기대 커져

17일 정부에 따르면 한·미 안보·통상 협상 팩트시트에는 한국의 우라늄 농축 및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에 대해 미국 행정부가 '포괄적으로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한·미 원자력 협정은 한국이 농축·재처리를 시행하려면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1974년 인도의 핵실험 이후 미국이 비확산 정책을 강화하면서 도입한 제한이다. 2015년 협정 재협상 때도 일부 연구 허용 정도로만 완화됐다.

다만 협정 개정은 미국 행정부의 지지만으로는 진행될 수 없다. 협정이 조약적 성격을 갖고 있는 만큼 최종 발효를 위해서는 미국 의회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한국은 현재 원전에서 사용하는 핵연료를 전량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원전 가동에 필요한 3~5% 수준의 저농축 우라늄을 확보하려면 자연우라늄을 분리·농축해야 하며, 최근 부상하는 소형모듈원전(SMR) 기술 역시 기존보다 높은 농축도의 연료가 필요하다.

사용후핵연료 저장 문제도 심각하다. 국내 원전의 저장시설은 이미 포화 임박 수준(90% 이상)에 도달해 있으며, 재처리를 통해 부피를 줄이고 일부를 다시 연료로 활용할 수 있지만 현행 협정은 이에 대해 제약을 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재처리는 사용후핵연료 부피 저감과 연료 재활용 측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영구 처분시설 확보가 근본적 과제"라고 말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13일 회의를 열고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2호기의 계속운전(수명연장)을 허가했다. 이로써 고리2호기는 2033년 4월까지 재가동된다. 사진은 이날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 2호기(왼쪽 첫 번째) 모습. 2025.11.13/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국제사회 검증·국내 수용성 등 복합 과제…"변화까지는 긴 시간"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는 산업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핵무기 개발과 연결될 수 있는 민감한 기술로 분류된다. 우라늄 농축도가 90%를 넘으면 무기급 성능을 갖추게 되고, 재처리 과정에서는 플루토늄이 추출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이 분야에 대해 엄격한 감시를 요구하고 있다. 농축·재처리가 허용된 일본 역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상시 사찰을 받고 있다.

국내 주민 수용성도 중요한 변수다. 일본 아오모리현 롯카쇼 재처리 시설은 주민 반대와 소송이 이어지며 완공이 27차례나 지연됐고, 1993년 착공 이후 현재까지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이 핵연료 자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미국 의회 승인과 국제사회 신뢰 확보, IAEA 검증 체계 수용, 국내 주민 수용성 등 복합적인 절차를 고려하면 실제 변화를 체감하기까지는 수년에서 10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핵연료 자립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만큼, 향후 제도적·사회적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seungjun24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