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정책 일관성·신뢰성 전제돼야 [기고]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2035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관련해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가 주도하는 토론회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11월에 개최되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이전에 정부안을 확정하겠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다행인 것은 다양한 공론화의 장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토론과 주장이 매우 치열하고, 설득과 소통을 통해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해 보자는 열의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탄소중립과 함께 에너지안보,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던 신정부의 정책 키워드가 일정에 쫓겨 탄소중립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량적 수치는 목표가 아니라고 하지만 기후부가 제시하는 4개의 시나리오를 두고 도전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결국 감축경로와 감축수단이 감축수준(목표)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2035NDC와 관련해 흥미로운 해외사례는 탄소중립의 선두주자인 유럽연합(EU)이 지난 9월 18일 2035NDC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감축범위(1990년 대비 66.3~72.5%)에 대한 의향서를 채택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 산업경쟁력 약화, 전환비용 부담으로 인한 정치적 공세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렇지만 2022년에 '녹색, 디지털, 회복력 있는 경제를 향하여'를 통해 유럽식 성장모델을 제시했고, 이후 유럽은 녹색 및 디지털 전환이라는 '쌍둥이 전환'(Twin Transition)을 위해 본격적인 혁신정책과 재정투입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2기 집행위원회에서도 '경쟁력 나침반'(Competitiveness Compass)에 기반해 청정산업딜, 옴니버스 패키지, 자동차, 철강, 에너지 등 업종별 액션플랜(행동계획)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어 산업경쟁력 향상, 저탄소시장 형성, 공급망 안정화, 규제 간소화를 위한 산업정책은 강화되고 있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EU의 최근 상황은 유럽경제의 미래를 위한 전략인 경쟁력 나침반의 기초가 된 '드라기 보고서'를 보면 이해가 간다. 이 보고서는 야심 찬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도 불구하고 EU 기업들이 막대한 단기 투자 수요와 경쟁력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유럽이 청정기술에서 우위를 갖고 있고 거대한 역내 시장에도 불구하고 제조기반이 약화하는 것은 산업전략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새로운 녹색 일자리 창출을 전제로 하는 그린딜이 유럽의 탈산업화로 이어져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실제로 유럽 자동차협회는 산업정책 없이 기후변화 대책을 수립한 계획 부족의 대표적 실패 사례가 자동차산업이라고 지적한다. 야심 찬 EU의 기후변화 목표 달성을 위해 전기자동차 도입을 추진했으나 중국산 전기자동차가 계속 유입되면서 독일 폭스바겐(VW), 스웨덴의 볼보자동차가 공장 폐쇄나 전기차 생산 목표 철회로 이어진 것은 산업의 준비도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 실패라고 진단하고 있다.

최근 2035NDC 수송부문 토론회가 끝나고 자동차모빌리티산업연합회(KAIA)가 급격한 전동화 전환으로 중국산 전기차가 국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국내 산업생태계의 전환 대응능력을 고려한 지속 가능하고 현실적인 수준의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는 건의문을 낸 것을 보면 기시감까지 든다.

탄소중립을 국가목표로 구체화하고 각국 정부가 녹색전환·디지털전환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응해 2020년 국제통화기금(IMF)이 "전통적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잘 설계된 녹색 프로젝트나 디지털 전환을 위한 구조개혁을 시행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회복에서 더 유리하다"고 권고한 데에 기반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코로나 대응 정책 모음 시리즈에서 원격진료, 보건시스템, 공급망 안정성과 함께 녹색회복을 제안했다. 즉 탄소중립을 위한 녹색전환은 본래 위기극복과 경제개혁을 위한 성장전략이다. 대부분 국가의 NDC 도출에서 경제적 기회와 성장동력이 빠지지 않는 배경이다.

탄소중립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국가들은 모두 에너지안보, 경제적 기회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실현 가능한 수단과 정책 그리고 재정투자 계획이 함께 제시되고 있다. EU가 의향서를 채택한 9월 18일에 공교롭게도 호주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62~70% 줄이겠다는 2035 NDC 목표를 발표했다. 총리부터 관련 부처 장관까지 참석한 기자회견에서 에너지 전환이 호주에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국가이익과 현세대 및 미래 세대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데 적합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특히 탄소중립으로의 질서 있는 전환을 통해 황금 같은 경제적 기회를 만들어내겠다는 짐 찰머스(Jim Chalmers) 재무장관의 발언은 인상적이다. 무질서한 전환은 경기침체, 일자리 감소, 임금과 생활수준 저하, 전기요금 상승을 야기하므로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해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명확성과 확신을 갖게 하겠다는 발언도 이어졌다.

온실가스 국가목표를 설정하면서 규제 일변도의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와 유상할당을 주요한 감축수단으로 제시했던 우리의 2030NDC 산업부문 대책, 국가별 산업구조의 차이는 외면한 채 산업계와 글로벌 대기업을 기후악당으로 몰아붙이는 발언을 보면서 느끼는 착잡함과는 대조를 보인다.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6월 17일 열린 국회 탄소중립 선언식에서 참석자들이 탄소중립 비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이번 2035NDC 공론화에서 산업활동 위축과 성장잠재력 약화에 이어 탄소 누출까지 우려하는 산업계의 목소리를 엄살 혹은 부정적 태도라고 일축해서는 안 된다. 이미 EU와 미국이 경험한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최근 공청회 혹은 토론회에 산업계의 참여와 관심이 떨어진다는 발언도 있지만, 뒤집어 보면 산업계가 갖는 무력감의 다른 양태일 수도 있다. 2030NDC를 도출하면서 있었던 지원정책의 지연 혹은 실종으로 인해 개별 기업이 부담한 비용과 정책 신뢰성 약화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탄소중립 사회를 위한 책임있는 주체로서 산업계에 대해 확신과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정책의 일관성과 제도적 뒷받침은 필수적이다.

탄소중립은 더 이상 구호나 의무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이고 현실이다. 따라서 탄소중립을 위한 이해관계자는 특정 집단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돼야 한다. 탄소중립이라는 전 지구적인 목표와 가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비난의 대상을 찾아 책임을 논하기보다 실현 가능한 수단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

나아가 말 그대로 대전환을 의미하는 탄소중립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을 언제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와 대책이 공개돼야 한다. 도전적 목표를 설정하되 수단은 실현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opini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