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1호 교섭 사업장 어디…포스코·쿠팡 등 5곳 절차 착수
원청 7일 공고 절차 돌입…노란봉투법 이후 첫 현장 시험대
교섭의제·범위 두고 노사 줄다리기…합의 불발시 중노위 판단 거쳐야
- 나혜윤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하청 노동자가 원청 기업과 직접 교섭할 수 있게 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첫 원·하청 단체교섭이 어느 사업장에서 이뤄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 시행 직후 하청 노동조합들이 잇따라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면서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할지 가늠하는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포스코와 한화오션, 쿠팡CLS 등 주요 기업들은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며 관련 절차에 들어갔다. 원청이 교섭 요구 자체를 거부하기보다 법에 따른 절차를 우선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들 사업장이 노란봉투법 이후 원·하청 교섭이 현실화되는 첫 사례가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12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10일 양대 노총을 중심으로 원청을 상대로 한 단체교섭 요구가 잇따랐다. 이 가운데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은 10일 0시 포스코 하청사 34개 노조의 위임을 받아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 측은 요구를 받은 당일 오전 교섭 요구 사실을 알리는 공고문을 게시했다.
노조법에 따르면 원청은 교섭 요구를 받은 날부터 7일 동안 관련 사실을 공고해 다른 노동조합의 참여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포스코는 공고를 통해 다른 하청 노조들도 교섭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면 17일까지 추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원청의 사용자성을 둘러싼 법적 분쟁으로 곧바로 이어지기보다는 일단 제도에 따른 절차를 따르겠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쿠팡CLS 측도 "17일까지 회사와 교섭하려는 노동조합은 교섭을 요구해 달라"고 안내했고, 한화오션 역시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했다. 한화오션 측은 "법령에 따라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고 충실히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제조업과 물류 등 서로 다른 산업의 원청 기업들이 법 시행 직후 교섭 요구 공고 절차에 들어가면서 노란봉투법 이후 원·하청 교섭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할지 가늠할 첫 사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포스코는 노란봉투법의 핵심 쟁점이 집중된 사업장으로 꼽힌다. 포스코는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 등에 방대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원청의 사용자 책임 범위가 어디까지 인정될 수 있는지가 향후 제도 운영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포스코 협력업체 노조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계열로 나뉘어 있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향후 교섭대표 노조를 정하는 과정이나 교섭 단위 분리 여부 등을 둘러싸고 복잡한 절차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포스코 사례에서 원·하청 교섭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경우 조선·자동차·건설 등 하도급 구조가 뚜렷한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화오션 역시 조선업 특유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가진 사업장으로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를 가늠할 사례로 꼽힌다. 조선업은 공정 전반에 걸쳐 협력업체 노동자 비중이 높은 만큼 교섭이 현실화될 경우 산업 전반의 노사관계 구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쿠팡CLS의 경우 물류·배송 노동자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이어져 온 대표적인 사업장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쿠팡은 현재 배송 노동환경 개선 등을 논의하기 위한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교섭 요구를 둘러싼 갈등이 사회적 논의로까지 확산핳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원청의 교섭 요구 공고가 이뤄졌다고 해서 곧바로 원·하청 교섭이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교섭 의제와 사용자성 인정 범위 등을 둘러싼 해석 차이가 남아 있어 실제 협상 과정에서는 상당한 갈등이 뒤따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선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범위를 둘러싼 해석 차이가 남아 있다. 개정 노조법은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사용자에게 교섭 책임을 인정할 수 있도록 했지만 현장에서는 계약 구조와 업무 지휘 방식 등이 사업장마다 달라 사안별 판단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측이 공고문에서 "추후 실질적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에 대해 법적 판단을 받아 교섭할 계획"이라고 단서를 단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포스코가 교섭 요구 공고 절차는 이행했지만 모든 하청 노조의 교섭권을 곧바로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회사 측도 33개 하청 노조의 위임을 받은 노조가 제기한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한 것일 뿐이라며 실제 교섭 범위는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어디까지 인정되는지에 대한 법적 판단 이후 결정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33개 하청 노조 모두가 교섭 대상이 되는지는 별도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실제 교섭 대상과 교섭 의제 범위를 두고 노사 간 줄다리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처럼 교섭 대상 여부를 둘러싸고 노사 간 해석이 엇갈릴 가능성에 대비해 정부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를 통한 판단 절차를 마련해 둔 상태다.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지만 사용자성 여부를 놓고 이견이 발생할 경우 중노위가 해당 기업이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을 행사했는지를 기준으로 교섭 의무 대상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중노위는 사건이 접수되면 최대 20일 이내 심사를 진행해 원청의 교섭 의무 인정 여부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원청이 사용자로 인정될 경우 해당 기업에는 노조와 단체교섭을 진행해야 할 법적 의무가 발생한다. 반대로 원청이 사용자로 인정받았음에도 교섭을 거부한다면 부당노동행위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하청 교섭이 실제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결국 초기 사례들의 전개 양상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포스코와 한화오션, 쿠팡CLS 등 주요 사업장에서 진행되는 교섭 절차가 향후 산업 전반의 노사관계 변화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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