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쿠팡·현대차까지…노란봉투법 첫날 원청 교섭 요구 '봇물'(종합)
양대 노총, 전국서 '진짜 사장' 교섭 공세…제조·물류·공공 전방위 확산
경영계 "산업현장 갈등 확대 우려"…정부·중노위에 공정한 판단 체계 촉구
- 나혜윤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2·3조)이 10일 본격 시행되면서,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기업과 공공기관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 법 시행으로 원청의 사용자 책임 범위가 확대되면서, 포스코·현대자동차·쿠팡·인천공항공사 등 주요 기업과 기관을 상대로 교섭 요구가 제출되는 등 실질적인 원·하청 교섭 사례가 현실화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계는 이를 계기로 원청과 하청 노조 간 교섭이 전 산업과 공공부문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에 따르면, 이날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은 포스코 대표이사 앞으로 단체교섭 요구 공문을 보내 원청과의 교섭을 공식 요청했다. 금속노련은 포스코 하청사 노조 34곳으로부터 교섭 권한을 위임받아 교섭을 요구했으며, 대상 조합원 규모는 약 3500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같은 날 사내 게시판을 통해 '교섭 요구 사실 공고문'을 게시했다. 공고문에는 다른 하청 노조들도 이달 17일까지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포스코는 "실질적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에 대해서는 법적 판단을 받아 교섭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택배 분야에서도 원청 교섭 요구가 이어졌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택배산업노동조합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기업은 직접 고용 관계가 없더라도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하청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국노총 산별노조인 한국공공사회산업노조는 공공기관 자회사와 대학·병원 하청 노동자들이 가입된 지부를 대표해 원청을 상대로 교섭 요구를 진행했다. 교섭 요구 대상은 서울시·한국철도공사·서울교통공사·신촌세브란스병원·고려대 의료원·고려대·중앙대·경희대 등 30여 개 기관이다.
민주노총 계열 노조들도 원청 교섭 요구를 확대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사내하청·사내용역·자회사 등 147개 하청 사업장에서 일하는 조합원 약 1만 명이 16개 원청 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청했다.
교섭 요구 대상 원청에는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LX하우시스, 에코플라스틱, KCC글라스, 한화오션, 현대삼호중공업, HD현대중공업, 한국지엠, 한국타이어, 한온시스템 등 주요 제조기업들이 포함됐다. 금속노조는 향후 교섭 요구 조합원 규모를 계속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민주노총은 900여 개 사업장에서 14만 명 규모의 조합원이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것으로 추산했다. 산업별로는 공공운수노조 2만 1000여 명, 서비스연맹 1만 8000여 명, 민주일반연맹 3만여 명, 건설산업연맹 6만여 명, 금속노조 7000여 명 등이다. 앞서 공문을 발송한 하청 노조들은 이날 재차 공문을 발송했고, 일부는 교섭단위 분리신청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부문에서도 원청 교섭 요구가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인천공항지역지부와 대학 사업장, 콜센터 노동자 조직 등 35개 원청 기관을 상대로 교섭 요구에 나섰으며, 교섭 요구 대상 노동자는 약 7859명 규모다.
교섭 대상 기관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 부산지하철 운영 서비스 조직,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국민카드 등 금융권 콜센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대학사업장(15개 대학법인)·시설 노동자 조직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공공기관이 지방정부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한 사례도 나왔다. 경기신용보증재단노동조합은 이날 경기도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공식 요구했다. 지방공공기관 노조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한 사례로, 공공부문 노사관계 구조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열고 간접고용·플랫폼 노동자의 원청 교섭권 보장을 촉구하는 투쟁을 선포했다.
이번 법 시행으로 원청 기업의 사용자 책임이 확대되고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이 강화되면서 노사 관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노동계는 그동안 하청 구조 속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원청이 교섭 책임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지적해 왔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을 계기로 원·하청 구조에서 발생하는 임금 격차와 노동조건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간접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등 새로운 고용 형태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 논의도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법 시행 초기에는 원청 교섭 요구 확대와 사용자 범위 해석 등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노동계는 법 취지에 맞는 교섭 문화 정착을 강조하는 한편 원청 기업의 교섭 참여를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경영계에서는 노란봉투법 시행과 관련해 산업 현장의 갈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원청 기업의 사용자 책임이 확대되면서 원·하청 교섭 요구가 동시에 늘어나고, 경영상 판단까지 노사 갈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특히 구조조정이나 사업 재편 과정에서 노조의 교섭 요구와 노동쟁의가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기업의 합병·분할·매각 등 경영상 결정이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칠 경우, 노조가 이를 교섭 의제로 삼거나 쟁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입장문을 통해 "노동계는 사용자성이 인정된 범위 외의 무리한 요구나 이를 관철하기 위한 불법행위를 자제해야 한다"며 "정부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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