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시행 직후 첫 판결서 총수 '무죄'…집행·입증 한계 드러나

노동계 "현장 관리자만 처벌하는 법으로 전락"
전문가들 "총수 형사책임 입증 구조 재검토 필요"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10일 경기 의정부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정 회장은 이날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6.2.10 ⓒ 뉴스1 양희문 기자

(세종·서울=뉴스1) 나혜윤 김종훈 한수현 기자 =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시행 직후 발생한 첫 사건인 삼표그룹 양주 채석장 붕괴 사고에서 법원이 그룹 총수와 법인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중처법의 책임 구조와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10일 노동계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법원이 중처법을 무력화했다"고 강하게 비판한 반면, 법조계와 현장 전문가들은 "입증 구조의 한계를 드러낸 판결"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번 판결은 중처법 적용 이후 총수가 기소된 첫 사건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재판부는 현장 관리자에 대해서는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과 전·현직 경영진에 대해서는 "중처법상 안전·보건 의무를 구체적으로 이행할 지위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누가 중대재해의 최종 책임자인가'라는 중처법의 핵심 질문에 대해 법원이 좁은 해석 기준을 제시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처법 1호 사건, 총수 무죄…노동계 반발·노동부 '원칙 유지'

노동계는 이번 판결이 중처법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은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제정된 법"이라며 "법원이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축소 해석해 총수와 최고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고발 대리했던 신하나 변호사(아리셀 참사 법률지원단장)는 "경영에 개입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안전보건까지 총괄하는 업무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 판단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며 "이 구조가 반복되면 중처법은 결국 현장 관리자만 처벌하는 법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직접적인 평가는 자제하는 기류다. 노동부는 통상 기소 이후 사건은 사법부 판단 영역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유지해 왔으며, 이번 사안도 "개별 판결에 대한 평가는 사법부 몫"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노동부 내부에서는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기본 정책 방향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 노동부 관계자는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의무 이행 여부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한다는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며 "사법 판단과 별개로 감독과 행정 조치는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입증의 벽 드러난 판결"…항소심·보완 입법 향배 주목

법조계와 노무 현장에서는 이번 판결이 중처법 취지를 부정했다기보다는, 형사책임을 묻기 위한 입증 구조의 어려움을 드러낸 사례라는 분석도 나온다. 법무법인 화우의 이문성 변호사는 "그룹 회장을 중처법상 경영책임자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일응의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라며 "앞으로 지배구조나 보고 체계만으로 총수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의 규범적 효력이 떨어진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 중처법"이라며 "노동자 3명이 사망한 1호 사건에서 회장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왔다는 것은 범죄 구성요건이나 책임 귀속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중처법 자체를 부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총수 책임을 형사처벌로 연결하기까지 넘어야 할 입증 문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확인한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항소심 판단에 따라 법원의 해석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지만, 중처법 1호 판결에서 드러난 '책임 주체의 한계'는 향후 수사·기소 전략과 입법 보완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노동법 전문가는 "중처법은 산안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제정됐지만, 1호 사건에서도 총수 책임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은 앞으로 경영자 책임을 묻는 데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대로라면 중처법이 현장 관리자 책임에 머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freshness41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