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재조준한 노동부…'법 사각지대' 특고노동자 제도 개선 없인 공염불

'야간노동' 올해만 7명 사망…'특수고용'에 가려진 근로자성
새벽 배송 논의도 공회전…"죽음 부른 구조 바뀌지 않아"

국내 최대 이커머스 업체 쿠팡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약 3370만 개의 고객 계정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유출에는 이름·전화번호·배송지 등 신상정보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소비자들 사이에서 2차 피해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2일 서울에 한 쿠팡 물류센터 앞에 쿠팡카(쿠팡 배송트럭)들이 주차돼 있는 모습. 2025.12.2/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노동 중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반복되자, 고용노동부가 현장 실태점검에 다시 착수한다. 그러나 지난해 기획감독 당시에도 핵심 개선 요구는 '권고'에 그쳤고, 여전히 현행법상 제도적 규율 장치가 미비한 상황에서 개선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현행법상 쿠팡 배송기사 상당수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현실에서, 반복되는 점검이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도 전반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노동부, 10일부터 쿠팡 사업장 22곳 대상 '야간노동' 현장 실태점검

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동당국은 오는 10일부터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물류센터 4곳과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배송캠프 3곳, 택배 대리점 15곳을 대상으로 야간노동 실태점검에 착수한다. 이는 김영훈 장관이 지난달 28일 경기 고양의 한 물류센터를 불시 방문한 뒤 내린 조치다.

노동부는 이번 점검에서 △야간근무 실태 △휴게시간 및 건강진단 제공 여부 △휴게공간 등 건강권 보호조치를 중심으로 현장 상황을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다. 위험 요인이나 개선 필요 사항이 드러나면 현장 조치와 함께 타 물류센터로의 확대 점검도 검토할 방침이다.

최근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야간 근무를 하던 근로자가 잇따라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26일에는 경기 광주시 쿠팡 물류센터에서 50대 근로자가 숨졌다. 올해 쿠팡 업무를 하다 사망한 노동자는 일용직과 계약직 택배 기사 등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7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같은 사망사고가 반복돼도, 핵심 제도는 바뀌지 않았다. 현행법은 야간노동 자체에 대한 규제가 미비해, 점검을 통해도 위법 적발 가능성 자체가 제한적이다. 산업보건안전법상 야간근로자에 대한 건강진단 조항은 있으나, 배송기사 다수는 '특수고용형태(퀵플렉서)'로 분류돼 해당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경기 부천시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 CJ대한통운 택배 차량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2025.8.13/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법 사각지대 놓인 특고노동자…"플랫폼·물류노동자 위험 내모는 현행 제도 손봐야"

야간근로수당 등 근로기준법상 권리 역시 '근로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위수탁 계약으로 일하는 배송기사들은 보호 사각지대에 머문다.

노동부는 지난해 10~11월 CLS 본사와 서브허브, 캠프, 택배영업점 등 81개소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기획감독을 실시했다. 그러나 배송기사에 대해선 "불법파견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퀵플렉서 1245명의 카카오톡 대화내역까지 분석했지만, 지휘·감독성이 인정되지 않아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배송기사에 대한 근로자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당시 점검 결과 대부분 '권고' 수준에 그쳤다. 노동부는 CLS 측에 야간 배송방식 조정, 주 5일 근무 보장, 건강검진 및 심리상담 확대, 프레시백 회수작업 개선 등 다양한 항목을 요구했지만 법적 강제력은 없어 이행 여부는 확인이 어려운 실정이다.

쿠팡은 산안법 위반, 휴게시설 미흡, 산재 지연보고 등 총 136건의 위반 사항으로 약 9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또 '가짜 3.3' 방식으로 일용직을 개인사업자처럼 위장한 사례도 360여 명 적발됐으나 핵심인 야간노동 구조나 고용형태 등 제도 밖의 본질적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쿠팡 야간노동 개선과 관련한 제도 논의는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서조차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국회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 3차 회의에서는 논란이 된 '새벽배송 금지' 의제가 사실상 논의되지 않았다. 노동부가 진행 중인 건강영향 연구의 중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노총은 0~5시 배송 금지를 제안했지만 쿠팡과 사용자 측 반발에 논의조차 진전되지 못했다. 여론의 반발과 업계 내부의 시각차로 사회적 대화는 장기 공전 상태에 빠졌다.

노동계는 반복되는 사망사고에도 제도적 사각지대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면서 정부의 보다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쿠팡 전반에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과로 유발 요인을 철저히 적발해야 한다"며 "국회와 정부는 플랫폼·물류 노동자를 위험으로 내모는 현행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빠른 배송만을 강요하는 구조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최소한의 기준조차 없는 시스템을 정부와 기업이 방관하고 있다면 죽음은 반복될 것"이라며 "더 이상 노동자가 새벽에 쓰러져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

freshness41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