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논의 재점화…김지형 경사노위 취임에 노사정 대화 '기지개'

정부 '포용적 노동개혁' 핵심과제 재가동…정년 65세 입법 첫 시험대
김 위원장 첫 행보로 한국노총 방문…민노총 복귀 촉구하며 대화 복원 시동

김지형 신임 경사노위 위원장 ⓒ News1 유승관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정년 65세 연장 연내 입법을 둘러싼 노사정의 갈등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정년연장을 '포용적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로 제시한 가운데, 김지형 전 대법관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 취임이 정년 논의를 사회적 대화의 테이블로 다시 끌어올릴 계기로 주목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취임 직후 "가장 시급한 일은 노사정 논의 주체 모두가 참여하는 완전한 회의체를 이루는 것"이라며 민주노총의 대화 복귀를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연내보다 더 빠른 시일 내 대화 재개가 가능하다"고 화답했다. 노사정 대화가 복원되면 정년연장은 새 위원회 체제의 첫 의제이자 정부 노동정책의 향배를 가를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김지형 위원장, 노동법 전문가…노사 신뢰 회복·제도적 합의 중시

7일 경사노위 등에 따르면 김지형 신임 위원장은 산업재해 진상규명과 노동인권 보호 활동에 앞장서 온 대표적 법조인이자 노동법 전문가다. 그는 구의역 사고, 태안화력 김용균 사망사건 등에서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아 구조적 안전 문제를 공론화했고, 노사 간 신뢰 회복과 제도적 합의를 중시해 온 인물로 평가된다.

노사 갈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균형감을 보여온 만큼, 경사노위가 정권 교체 이후 노사정 협의의 실질적 재개 플랫폼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가 이번 인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플랫폼 종사자 권리보호 등을 '포용적 노동개혁'의 축으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노동계의 불참과 경영계의 반발로 사회적 합의 경로가 좀처럼 가동하지 않으면서 정책 추진은 주로 정부·여당 중심의 일방향적 입법 구도로 흘렀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등판은 대화 없는 개혁에서 합의 기반 개혁으로의 전환 신호로 해석된다.

여러 노동 의제 가운데에서도 정년연장은 노사정 대화의 상징적 관문이자 최대 난제로 꼽힌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3일 '회복과 성장을 위한 정년연장 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단계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입법을 연내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계 역시 "노후 소득 공백 해소를 위한 보편적 법정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압박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모두 "국민연금 수급연령에 맞춰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경영계는 "노동시장 경직과 청년 일자리 축소를 초래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경총은 "일률적 정년연장보다는 퇴직 후 재고용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합의 없는 입법은 또 다른 갈등 불씨…'누가, 어떤 방식으로'가 핵심

정년연장 논의의 핵심 쟁점은 '언제, 어떻게'보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합의하느냐'에 있다. 지난 정부 시절 노란봉투법이 노사 합의 없이 국회 단독 처리로 통과된 뒤 사회적 파장이 컸던 만큼, 정년연장도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될 경우 노사정 갈등이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정년연장이 노사정 협의의 첫 시험대이자, 경사노위가 정책조정기구로서 실질적 복권이 가능한지를 가늠할 바로미터가 되고 있는 이유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합의를 기다리면 100년이 지나도 입법할 수 없다"며 정부·국회 중심의 논의를 촉구했다. 그러나 동시에 "단계적 적용은 가능하지만 업종별 차등 적용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정년연장 문제를 사회적 합의의 틀 안에서 다루되, 정부가 중재자로서 구체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압박 메시지로 해석된다. 노동계가 정부의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는 동시에 경사노위에 실질적 조정자 역할을 주문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일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한국노총을 방문해 상견례 및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방문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경사노위가 사회적 대화의 복원과 상생의 노사정 관계 재정립을 위한 첫걸음으로, 노사정 협력의 중심축인 한국노총과 신뢰를 쌓기 위한 상징적 행보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경사노위는 노사정이 함께 국가적 아젠다를 논의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협치의 제도적 공간"이라며 "한국노총이 그간 보여준 사회적 책임 의식과 대화를 중시하는 노동운동의 전통은 한국형 사회적 대화의 기초가 돼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경사노위는 국정의 주요 파트너이자 노동계의 맏형인 한국노총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경제·사회에 산적한 과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겠다"며 "우선적으로 노사정이 함께 신뢰의 토대를 복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사노위 내부에서는 김 위원장의 첫 공식 행보가 '사회적 대화 복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노총의 복귀를 촉구한 데 이어 한국노총과의 신뢰를 확인함으로써 정년연장 등 주요 노동 현안을 다룰 기반부터 다졌다는 것이다.

결국 김지형호(號) 경사노위가 정년연장을 매개로 노사정 신뢰를 복원하는 첫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정년연장 논의가 사회적 합의로 이어진다면 경사노위는 단순한 자문기구를 넘어 노동정책 결정의 실질적 플랫폼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특히 경사노위의 협의에서 성과가 도출될 경우, 노동시간 단축·플랫폼 종사자 보호 등 이재명 정부의 노동개혁에도 정책적 동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정년연장에 대한 노사정의 첨예한 갈등을 언급하며 "김 위원장이 노사정 신뢰를 다시 세울 수 있느냐가 향후 노동개혁의 방향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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