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노란봉투법…전문가 "노사 넘어 '노노 갈등'이 더 큰 뇌관"
한정된 임금재원 두고 원·하청 노조 간 갈등시 '제로섬 게임' 우려
이해관계 다른 '원청 복수노조-다수의 하청노조'…복잡해진 노·사 방정식
- 김승준 기자
(세종=뉴스1) 김승준 기자 = 하청 노조의 원청 교섭이 가능해지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이 6개월 후 시행을 앞두면서, 기존의 노사 갈등뿐 아니라 원·하청 노조 간 이해충돌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성과급이나 복지 혜택 등 재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원·하청 노동자 간 '제로섬 게임'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5일 경제계 등에 따르면, 6개월 후 노란봉투법 시행에 대비한 보완책 마련을 놓고 각계에서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대표적인 쟁점은 노사갈등 격화 가능성이다. 앞서 4일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인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주관으로 열린 '기업성장포럼 출범식'에서 김은혜 국민의힘 원내정책수석부대표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 문제를 두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김은혜 부대표는 "기업들은 무대응으로 줄소송을 당하거나 정규직 노조에 고통 분담을 요청하는 힘겨운 교섭을 할 수 있다. 공장 이전, 자본 이탈을 고민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영훈 노동장관은 "이 법은 갈등을 해결하고 노사 모두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며 "기업의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해서도 원·하청 상생 생태계가 필요하다. 책임 있는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직접 대화가 가능해지면, 장기적으로는 기업 운영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개념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는 원청 사용자도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이 있다면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의 성과급 총액을 정하고 이를 배분해 하청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구조라면, 하청 노조는 해당 성과급에 대해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인 지난 7월 25일 서울행정법원은 원청이 하청노동자에 대한 성과금, 학자금 지원, 노동안전 등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 할 수 있는 사안이 있다면 교섭의무가 있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이러한 법원의 판단 없이도 원청의 교섭의무가 법적으로 명문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법 시행에 따라 하청 노조가 원청과의 교섭에서 성과급 인상 등을 이끌어내는 경우, 같은 재원에서 성과급을 받는 원청 노동자들의 몫이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원·하청 노동자 간 이해충돌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한국 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는 "지금 대기업 노사에서도 말이 많은 것이 한정된 범위의 인건비 배분 문제인데 이 구조에 하청 노동자들이 참여하게 되는 상황"이라며 "원청노조와 하청노조가 쉽게 연대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갈등이 근본적으로 내재돼 있다. 특히 성과급처럼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두고 배분하는 경우 노노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행법에서는 사업장 내 복수의 교섭대상이 존재할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전까지는 같은 회사 내의 복수노조를 대상으로 적용되던 규정이었지만, 앞으로는 하청 노조까지 포함한 교섭창구 단일화의 기준과 절차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는 당사자 간 자율 합의를 우선 유도하고, 합의가 안 되면 중앙노동위원회가 단일화 방법과 교섭 단위를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더라도 현실적인 문제는 남는다. 원청 회사는 하나지만 하청 업체는 다수로 구성된 경우가 많고, 하청 간 이해관계도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원청 노조와 다수의 하청 노조 간 단일화 및 이견 조율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과거 같은 회사 내 비정규직 노조와 정규직 노조의 이해관계 조율 실패에 따른 갈등 심화가 원·하청 관계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탄소중립, 인공지능(AI) 도입 등 산업 구조 재편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고용 유지 및 재배치 문제 등을 둘러싸고 노동자 간 이해관계가 갈리는 사안의 경우 원·하청 노조의 갈등이 새로운 축으로 부상할 수 있다.
박 교수는 "기술·기후 변화에 대응하며 고용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노사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제인데 (노란봉투법으로) 새로운 갈등 구조로 치달을 수 있다는 걱정이 있다"며 "이런 대외적 환경에 직면했을 때 정부와 노사가 협업하며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과 태도가 필요한데 노란봉투법은 (갈등을 키운다는) 정반대의 기조로 밀어 넣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하청, 사용자·노동자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에서 개별 노사 분규로 풀라고 하기보다는, 2년 전 시도한 조선업 상생협의체처럼 정부가 중재역을 맡아야 노사 양측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이 주력산업이 위기에 있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객관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상생협의체 등 갈등을 완충시킬 기제를 만들어 노사, 노노 모두 살 수 있는 해법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seungjun241@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