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두 카드'에 농민 "전략작물 무너진다"…정부는 확대 부인
관세 협상 교착 틈타 '농산물 개방' 우회 카드 급부상
정부 "대두 수입 논의 없다"…농가 "정책 신뢰 흔들려"
- 나혜윤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한미 관세 협상이 막바지 조율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미국산 대두(콩) 수입 확대가 새로운 협상 카드로 거론되면서 국내 농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 갈등으로 막힌 대두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한국에 추가 수입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의 전략작물 강화 정책과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21일 관가에 따르면 정부는 당초 농산물 시장 개방은 협상 의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혀 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대두 수입 중단은 경제적 적대 행위"라고 직접 언급하고,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도 "한미 무역협상에서 농산물 관련 새로 들은 것은 대두 정도"라고 밝히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일각에서는 당장 협상의 핵심 의제는 아니더라도 대두가 미국 측 수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의 대두 수출은 올해 들어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 퍼듀대학교 상업농업센터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미국 대두 수출의 절반 이상인 9억 8500만 부셸을 차지했지만, 올해 1~8월에는 2억 1800만 부셸로 급감했다.
특히 6~8월에는 사실상 대중 수출이 끊겼다. 이는 중국이 미국산 대두에 34%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국 수입 비중이 줄면서, 브라질 등 남미산 대두가 대체 공급원으로 떠올랐다. 이에 한국, 일본, EU 등 동맹국과의 협상에서 대두 수입 확대를 관철시키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
일본은 이미 지난 7월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미국산 대두·옥수수 등 농산물 수입 확대를 약속한 바 있다. 한국도 이번 협상에서 유사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일정 규모의 대두 수입 확대를 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지난해부터 대두를 '전략작물'로 지정하고 자급률을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올해 국내 콩 재배면적은 8만 3133ha로 전년보다 12.3% 증가했으며, 정부의 '전략작물직불제' 확대로 농가들의 작목 전환도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산 대두 수입이 확대될 경우 시장 공급 과잉으로 국산 콩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벼 대신 콩을 심으라는 정부의 말만 믿고 빚을 내 기계를 사고 작목을 바꿨다"며 "이번 한미 협상 과정에서 쌀, 소고기, 사과 등 품목만 바꿔가며 추가 개방 가능성을 언급하는 모습을 보며 농민들은 깊은 실망을 느끼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현재 한국은 미국산 대두를 주로 채유용으로 수입하고 있으며, 자유무역협정(FTA) 및 세계무역기구(WTO)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을 통해 들여오고 있다. FTA TRQ의 경우 매년 3%씩 자동 증량되지만 추가 확대는 상대국과 합의가 필요하다. 반면 WTO TRQ는 한국 정부가 기획재정부 내부 판단만으로도 수입량을 조정할 수 있어, 외교적 부담 없이 확대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미국이 WTO TRQ 방식을 통한 '조용한 확대'를 선호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다만 정부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대두 수입 확대 논의는 없다는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협상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언급은 어렵지만, 현재까지 수입 확대 논의는 진행된 바 없다"며 "국산 콩 소비 촉진과 자급률 제고를 위해서는 비축 콩 할인 공급 등 다양한 수단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협상에서 대두 수입은 상징적 제스처 이상의 역할을 하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나 자동차·반도체 등 주요 품목과 비교하면 대두 수입은 협상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문제는 농산물 시장 개방 여부가 관세 협상 전체의 타결 여부와 직결되지는 않지만, 미국에 '성의 있는 카드'를 제시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국회 인준이나 예산안 처리 등 후속 절차에서 미국과의 윈윈 명분이 필요한 상황에서, 국내 여론 저항이 적은 품목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한미 간 협상 줄다리기가 아직 유효한 만큼 협상 테이블 위로 여러 시나리오가 오갈 것"이라며 "만약 대두 수입이 불가피할 경우 농민 설득과 함께 자급률 목표를 흔들지 않는 선에서의 정무적 절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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