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덮친 밥상…커피·옥수수·배추까지 번진 '식량 대란'
[기후위기 시대, 식량안보 기술]① 일상화된 식품 물가 폭등
2100년 옥수수 수확량 12% 감소 전망…반복되는 채소 물가 대란
- 김승준 기자
(세종=뉴스1) 김승준 기자 = 한때 농사가 망하면 하늘을 탓했다. 비를 부르는 기우제, 홍수를 달래는 기청제는 자연 앞에 겸손하던 인간의 의식이었다.
이제 하늘의 변덕은 인간이 만든 결과다. 인류가 초래한 기후변화는 가뭄과 홍수로 되돌아와 세계의 식량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이미 그 대가는 현실화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해 아라비카 원두 가격은 1년 동안 58% 급등했다. 그 배경에는 브라질과 베트남의 장기 가뭄, 인도네시아의 비 피해가 있었다.
글로벌 커피 대란 같은 단기 가격 불안정은 점차 여러 품목으로 확산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식량 생산량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경고도 잇따른다.
전 세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국제기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2023년 종합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지난 50년간 농업 생산성의 증가세가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IPCC 분석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없었을 경우와 비교해 현재 밀은 4.9%, 옥수수는 5.9%, 쌀은 4.2% 덜 생산되고 있다. 이 같은 생산량 감소는 기후변화가 심화할수록 더욱 커질 전망이다.
특히 옥수수는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작물로 지목된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연구진이 올해 6월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옥수수, 밀, 쌀, 콩, 보리, 카사바 등 여섯 가지 주요 작물 중 옥수수가 폭염과 기후 불안정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밝혔다.
중간 수준의 기후변화 시나리오에서도 옥수수 수확량은 2100년까지 약 12%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옥수수가 단순한 식량 작물을 넘어 현대 식품 체계의 핵심축이라는 점이다.
옥수수는 사람이 직접 먹는 식품일 뿐 아니라, 동물 사료의 주원료이자 시럽·기름·전분 등 각종 가공식품의 기본 재료다. 이를테면 양념치킨은 옥수수 사료를 먹은 닭을, 옥수수에서 짜낸 기름에 튀겨, 옥수수 과당시럽이 들어간 양념에 버무려 먹는 음식이다.
현대인의 식탁은 옥수수가 지탱하는 셈이다. 따라서 옥수수 수확량의 감소는 육류·유제품·가공식품 등 전반적인 식량 가격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생산량 감소는 단순히 기온 상승이나 극한 가뭄·홍수 때문만이 아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경작지 축소, 토양 환경 변화, 병해충 확산, 수자원 불안정 등 복합적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IPCC와 FAO 등은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생산 차질이 식량안보의 구조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국가별·국제적 차원의 식량안보 전략 수립을 권고하고 있다.
생산 불안정이 농업의 생산 단가와 불확실성을 동시에 키워 농업 기반을 약화시키고, 한 지역의 생산량 감소가 전 세계 식품 물가를 급등시키는 등 연쇄적 영향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 농업도 국제적 경고대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농민들은 폭염과 극한 강수에 고통받고 있고, 소비자들은 물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배추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작물이자, 김치를 매개로 한국인의 식생활 전반에 파급력을 미치는 대표적 사례다.
2025년 3월 배추 1포기(상품 등급) 평균 가격은 5532원으로, 평년 3874원 대비 42% 올라 '금배추'라는 말이 등장했다. 발단은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이어진 이상고온과 집중호우였다. 재배면적이 줄고, 생육에도 불리한 기후로 출하량이 감소하면서 겨울부터 높은 가격이 이어졌다.
배추는 18~20도에서 잘 자라는 저온성 작물로 고온, 극심한 일교차, 집중호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제 고랭지 배추의 경우에는 평균 기온이 1~3도만 올라도 생육 속도 저하, 병해충 발생, 품질 저하 등 피해를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추 대란'이 이어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2024년 말부터 비축분 방출, 수입 확대, 소비자 할인 지원 등 일시적 수급 관리 정책 수단을 총동원했다.
이런 수급 대란은 배추뿐 아니라 시금치, 토마토, 상추, 양상추 등에서 돌아가며 일어나고 있어 할인, 관세 지원 등 재정 지출이 수반되는 일시적 수급관리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농업·농촌 혁신 전략'을 중심으로 기후변화 적응 역량 강화에 나섰다.
단기적으로는 채소·과일용 신규 재배 적합지 발굴과 배수·재해 예방 시설 확충이 추진되고, 중장기적으로는 기후 데이터 수집·분석, 대응 매뉴얼 개발, 기후 적응형 품종·재배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2026년까지 '농업 마스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단기 수급 예측 고도화 및 선제적 수급 조절을 위한 맞춤형 알림서비스를 개발해 수급 관리를 고도화한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곧 발사될 농림 위성을 통해 한층 정밀해질 전망이다.
정부는 또한 인공지능(AI)과 유전체 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육종' 연구와 인프라 확대를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작물 재배에서 기후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스마트 농업'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R&D)과 제도 개선도 활발하다. 구체적으로 △데이터 수집 및 표준화 △수직농장 설립 규제 완화 △스마트 농업용 에너지 효율화 모델 연구 △스마트 농업 육성·보급 자금 지원 등이 추진되고 있다.
이외에도 △수확 후 관리 기술 개발 △비축 시설 현대화·신설 △비축 기간 연장을 위한 저장 기술 개발 △계약 재배 비율 확대 등의 정책도 병행된다.
seungjun24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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