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철 단죄 12일 만에 전군 검열 정황…北 '부정부패 전면전'

"사심은 배신과 파멸로 몰아가는 독약"…간부층에 경고
박희철 일당 조사, 전군으로 확대…"간부들 '무자비한 검열'"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1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전날 평양에서 당·정·군 연합회의를 열고, 박희철 전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과 측근들의 부정부패 행위를 공개한 뒤 이들을 처벌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북한이 "사심은 흑심을 낳고 흑심은 변심을 낳는다"며 간부들에게 강도 높은 경고를 보냈다. 박희철 전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의 '특대형 부정부패' 사건을 공개 단죄한 데 이어 전군을 대상으로 검열에 착수한 정황도 포착되면서 고강도 사정 작업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23일 나온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전날 3면의 약 4분의 1을 관련 기사에 할애하며 간부들의 청렴결백을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신문은 '사심은 흑심을 낳고 흑심은 변심을 낳는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청렴결백성이 일군의 생명이라면 사심은 일군을 배신과 파멸로 몰아가는 독약"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는 억대의 재부를 쌓아놓을지 모르나 당과 조국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며 "혁명에 막대한 해독적 후과를 끼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별도 기사에서도 "원칙성과 청렴결백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그가 누구든 혁명대오에 있을 자리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부정부패를 개인의 도덕적 일탈이 아닌 체제에 대한 '변심'과 '배신'으로 규정한 것은 간부층 전반에 경고를 보내고 군부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 전 부국장 사건을 계기로 내부 기강을 본격적으로 다잡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도 읽힌다.

◇매관매직·뇌물수수에 추종세력까지…'정치범' 규정

이 같은 메시지는 박 전 부국장과 측근들의 비리 및 처벌 사실을 공개한 당·정·군 연합회의가 열린 지 12일 만에 나왔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10일 이례적으로 당·정·군 연합회의를 열고 박 전 부국장과 관련자들의 부정부패 행위를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노동신문 등에 따르면 박 전 부국장은 지난 4년간 조직권과 인사권을 악용해 매관매직과 뇌물수수를 일삼고 측근들을 주요 보직에 배치했다. 국가 자금과 물자·주택을 빼돌린 것은 물론 자신에 대한 "특별한 환상"을 조성한 혐의도 받았다.

북한이 추종 세력까지 거론한 것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개인 비리가 아니라 김 총비서의 유일적 군 지휘체계를 훼손한 정치적 행위로 규정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총비서는 당시 박희철 사건을 "국가와 인민의 이익을 침해한 고의적인 탐오행위, 약취범죄"라고 질타하며 "부정부패와의 전면 전쟁을 선포하고 투쟁의 강도를 부단히 높이는 때에 특대형 부패 사건이 발생했다는 데 문제의 엄중성이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노동신문이 '원칙성과 청렴결백성'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사정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실제 사정의 칼날은 박 전 부국장 개인을 넘어 군 전체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1일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규율조사부가 지난 5월 말부터 국방성과 총참모부·총정치국을 시작으로 각 군단과 사단 간부들을 검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 전 부국장 일당에 대한 조사가 전군 차원의 검열로 확장된 정황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열에서는 당 정책 집행과 직권남용, 부정부패, 부화행위 등이 집중적으로 조사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총참모부와 총정치국 간부들은 최근 5년간의 생활을 돌아보는 30장 이상의 자기비판서를 작성했으며, 검열에 관해 간부들끼리 의견을 나누는 것도 금지됐다고 한다.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RFA에 "군 간부들이 이전과는 다른 무자비하고 엄격한 검열이라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평양의 저승사자' 조용원 복귀…장기 사정전 돌입 관측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 당 총비서가 전날인 9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1차 확대회의를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사건 처리 과정과 맞물려 김 총비서의 최측근인 조용원 당 비서가 조직 업무에 전격 복귀한 점도 주목된다. 조용원은 지난 3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임명됐지만 불과 3개월 만에 당 조직비서로 돌아와 조직지도부를 다시 맡았다. 기존 조직비서였던 김재룡은 해임됐다.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북한의 모든 당·정·군 간부에 대한 인사와 감시·검열을 담당하는 핵심 권력기관이다. 김정은 체제 초기부터 조직 업무를 맡아온 조용원은 장성택과 리영호 등 당·군 고위 인사들의 숙청 실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평양의 저승사자'로도 불린다. 군부의 조직·인사 관리에 허점이 드러나자 김 총비서가 사정 경험이 풍부한 조용원을 긴급 투입해 내부 통제를 강화하려 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박희철을 사실상 공개 인민재판 방식으로 처단한 것은 체제 결속을 꾀하기 위한 공포정치의 일환"이라며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장의 주도 아래 당·정·군을 대상으로 한 고강도 검열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조치를 "군부의 비위를 국가적 경종으로 삼겠다는 극단적인 조치"라고 진단했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의 책임을 정권의 무능이 아닌 군부의 부패로 돌려 주민 불만을 흡수하고 김정은 유일영도체제를 재확립하려는 계산"이라며 "거물급 인사를 단 보름 만에 단죄한 것처럼 본보기식 신상필벌이 수시로 단행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망했다.

angela02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