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특사'로 방북한 이해찬…생전 "남북 교착 가장 아쉽다" 소회도
정상회담 물밑 조율부터 민관 방북까지…남북 분기점의 상징적 인물
대화 국면과 교착 국면을 모두 겪어…남북관계 역사 한 축으로 남아
-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베트남 출장 중 심근경색으로 별세한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남북관계의 굽이마다 직접 현장을 오간 '가교형 정치인'이었다. 관계 조율과 신뢰 형성에 있어 현장형 조정자로 평가받아 온 그는 최근 들어 장기화한 남북 교착 국면에 대한 아쉬움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온 바 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총리로 재직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재방북을 위해 노력해 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수석부의장은 노무현 대통령 정무특보로 활동했던 2007년 3월에는 '비공개 방북'에 나서며 같은해 10월 남북정상회담 성사 과정의 물밑 국면에 관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방북은 공식적인 특사 임명 형식은 아니었지만,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사실상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사전 교감·의제 조율 성격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그는 2018년 9월에는 정당 대표 특별 수행원 자격으로 '9·19 평양 남북정상회담'에도 동행했다. 당시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40분간 대담을 나눴고 남북 국회교류를 북측에 제안하기도 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같은 해 10·4 남북공동선언 11주년 기념행사를 계기로 150여명의 민관 방북단이 평양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참여했다. 방북단은 당시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평양을 찾아 10·4선언 기념 공동행사와 예술공연 관람, 부문별 남북 협의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이는 남북 대화에 훈풍이 부는 가운데 정부 인사, 정치권, 민간이 함께 평양을 찾은 상징적 장면으로 평가되고 있다.
남북관계의 주요 국면마다 현장을 밟아온 그는 최근 들어 남북 대화·소통 단절이 장기화하는 데에 대한 아쉬움을 반복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재임 기간에도 남북 대화 채널이 사실상 단절된 현실을 언급하며 "남북관계가 막혀 있는 상황이 개인적으로도 가장 아쉽다"는 취지의 소회를 여러 차례 주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관계를 단기적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구조적 과제로 인식해 온 그의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라는 분석이다.
교육부 장관과 국무총리, 여당 대표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이 수석부의장은 강한 추진력과 조정 능력을 겸비한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 정치권에선 그를 두고 "전략가형 실무 정치인"이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남북관계 분야에서는 공식 협상가라기보다 정치적 신뢰를 전달하고 관계를 조율하는 연결자 역할이 두드러졌다는 분석이 많다.
그의 정치 이력에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개인사도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 불법 구금과 고문 피해를 겪은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한 고문 후유증과 만성 질환은 오랜 기간 건강에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강한 업무 강도로 유명했지만, 고문 후유증은 평생의 짐이었다"고 전한다.
이 수석부의장은 지난 22일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베트남 호찌민을 방문했다가, 다음 날인 23일 아침 건강 이상 증세를 보여 긴급 귀국 절차를 밟던 중 베트남 공항에서 호흡 곤란 증세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스텐트 시술 등 치료를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25일(현지시간) 오후 2시 48분 별세했다.
정치권에서는 그의 별세를 두고 "이해찬은 한국 정치에서 단절과 전환의 시점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인물"이라며 "방북 경력 자체보다도, 그가 등장한 시점들이 남북관계의 전환기였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다른 여당 관계자는 "정책가·전략가·조정자라는 세 얼굴을 동시에 가진 정치인이었다"며 "남북관계사 속에서도 하나의 축으로 기록될 인물"이라고 말했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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