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의 팩토리] 누가 '모든 전쟁의 어머니' 원하는가

(서울=뉴스1) 윤석민 대기자 = 1991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었다. 그 전해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점령으로 개시된 걸프전(1차)에 종군기자로 참여한 것이다. 다란에 위치한 다국적군 전선사령부에는 각국에서 온 취재진들로 북적였다. CNN, ABC, BBC 등은 저마다 스튜디오를 차리고 TV에서나 보던 피터 제닝스, 톰 브로코, 댄 래더 등 당대 유명 앵커들은 현장서 생방송에 열 올렸다. 나에게 피해만 없다면 싸움 구경처럼 재미진 것도 없다.

냉전종식 후 첫 국제전인 걸프전은 누가 세계의 경찰인지 확고히 하며 새 판짜기에 들어선 ‘뉴월드 오더’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동시에 이제까지의 전쟁 양상을 확 바꾼 일대 ‘게임 체인저’였다. 탱크와 함포로 대변되는 종래 전쟁 스타일이 IT 첨단 과학과 전자전 양상의 현대전으로 완전 탈바꿈했다. 현재 유사시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국의 전략자산들도 모두 이 전쟁서 첫선을 보이며 데뷔했다.

B-2 스피릿 스텔스 전략폭격기.ⓒ AFP=뉴스1

북한의 김정은이 제일 두려워한다는 B2 스텔스 전략폭격기는 당시 유령처럼 사담 후세인의 ‘심장부’인 바그다드로 파고들었다. 멀리 지중해나 홍해상서 발사된 토마호크 미사일들은 그 이름 의미 그대로 인디언돌도끼처럼 이라크 전략시설들을 까부쉈다. 지상에는 미사일 방어망인 패트리엇 시스템(패트리엇 I)이 배치돼 후세인의 ‘최종병기’인 스커드미사일들을 요격했다. 온갖 첨단 스마트 폭탄들도 베일을 벗고 성능을 과시했다. 레이저 정밀 유도로 목표물을 정확히 때리는 장면은 각 가정의 거실까지 중계됐다. 비디오 게임물 같은 전쟁의 안방극장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약 1개월에 걸친 이라크 폭격이 끝나고 2월 24일 최후의 지상전은 시작됐다. 한국 의무대대가 다국적군으로 참전하였기에 그들과 함께 해방되는 쿠웨이트로 진군했다. 반년만에 이라크 압제서 해방된 쿠웨이트 주민들의 환호는 열광적이었다. 쿠웨이트시티 내 버려진 한국대사관을 찾았을 때 한 주민은 딸들을 데리고 나와 “한국인이 돌아왔다”며 기자를 얼싸안으며 감격해 하기도 했다.

레지스탕스를 펼쳤다는 한 쿠웨이트군 소령은 자신의 차를 이용해 시내 구석구석을 돌며 이라크군의 잔학상과 점령시 참상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줬다. 그가 안내한 곳 한군데는 대형병원 시신안치소였다. 두개골이 터지고 눈이 도려지거나 성기가 잘린 참혹한 시신이 유독 많았다. 소령은 이라크군 1명 위해시 인근 주민 5명을 무작위 고문, 처형하는 ‘나치식’ 공포 통치가 자행됐다고 덧붙였다. 파견전 후세인의 반외세적인 아랍민족주의와 이슬람공영권(움마) 주장에 대해 일부 수궁해왔던 기자로서는 배신감조차 들었다.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자신들의 옛 땅, 같은 핏줄을 내세웠다. 실제 이라크 변방의 한 어촌 마을이던 쿠웨이트는 어느날 검은 석유가 터지고 브리티시페트롤(BP) 등 석유메이저(외세 자본)들이 마을 족장에 지나지 않던 알사바 집안을 내세우며 독립왕국이 된 곳이다. 후세인은 점령후 쿠웨이트를 19번째주로 편입했다. 하지만 어떤 거창한 구호에도 그들은 그저 적이자 약탈꾼이었을 뿐이다.

죽음의 고속도로ⓒ News1

한때 점령군 칭호에 들떴던 후세인 군대의 운명 또한 가혹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쿠웨이트시티로부터 이라크로 통하는 자흐라 고속도로는 ‘죽음의 하이웨이(Highway of Death)’로 불렸다. 서둘러 퇴각하는 이라크군 행렬을 향해 A-10 등 미 공격기들이 무차별 공격을 가하며 대학살이 벌어진 곳이다. 부서진 탱크 포탑 위에 죽은 승무원의 시신이 그대로 녹아내려 부조물을 연상케 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로댕의 ‘지옥문’ 실사판이 있다면 그곳일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것은 포로가 된 이라크 병사들의 휑한 표정이다. 한달 내내 머리 위로 퍼부어진 포·폭격속에서 공포에 절어 자신의 생사뿐 아니라 두고 온 가족의 안위를 걱정했을 그들이다. 혼이 완전 달아나 얼뜬 그들의 얼굴에는 항전의 의지보다 목숨은 건졌다는 안도의 빛이 감돌았다. 후세인이 ‘완존’ 미워진 순간이다.

후세인은 이슬람권을 향해 미국에 대한 항전을 부추기며 이 전쟁이 ‘모든 전쟁의 어머니(Mother of All Battles. MoAB)’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일각에서는 인류 최후의 전쟁 ‘아마게돈’이라는 표현도 떠돌았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미국 등 다국적군의 압도적 화력에 일방적 패배로 끝났다. 지상전 개시 100시간만에 후세인은 무조건 백기를 들었다. 자신은 목숨은 구했지만 그의 명령을 따르던 병사 7만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그 가운데에서 무고한 희생이 뒤따랐을 민간인들의 피해는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

이 전쟁서 경험한 미국의 전쟁 대응은 신중함 그 자체였다. 우선 자국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전략 수립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충분한 대외적 명분이 필요했다. 이들에 대한 확고한 계산이 서자 비로소 전쟁에 돌입했다. 한 마리 토끼를 잡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호랑이의 모습이다. 다국적군의 공세는 1월 16일부터 약 2개월 동안 진행됐지만 실제 걸프전은 발발서 완료까지 반년이 걸린 전쟁이다. 이 기간 미국은 전장을 압도할 병력 집결 및 군수물자 비축에 힘쓰는 것 못지않게 왜 미국이 전쟁에 나서야 하는지 안팎으로 명분 쌓기에 주력했다. 그 결과 친미 아랍왕정국뿐 아니라 미온적이던 중립적 이슬람국가들의 동참을 이끌어 냈다. 이슬람권의 항전을 꿈꾸며 시작된 후세인의 ‘전쟁의 어머니’는 이미 승패가 드러나 있던 셈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이슬람국가(IS) 시설을 겨냥해 처음으로 실전 사용한 GBU-43/b.. 비핵무기 중 최대 위력을 지닌 이 폭탄의 별칭 '모든 무기의 어머니(모압)'는 후세인이 내세웠던 '모든 전쟁의 어머니'에서 따왔다.. ⓒ뉴스1

최근 북핵 및 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한반도 기류가 심상치 않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이 예상되던 지난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최고조에 달했던 위기설은 일부 가라앉기는 했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북 군사제재 가능성이 여전한 가운데 북한 김정은 역시 도발의 수위를 낮출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이는 때문이다.

군사전문가 대부분은 김정은에 대한 선제 타격이 십중팔구 북한의 응전을 부를 것으로 우려한다. 그것이 설령 부분적 제한적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0%도 허용돼서는 안되는 확률이다. 클라우제비츠의 말마따나 전쟁은 정책의 연장이고 최후의 해결 수단으로 남아야 함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전쟁이 나면 군대 주특기였던 90mm 무반동총(RR)을 들고 25m까지 기어들어가 적 탱크 1대쯤 날려버릴 비장함도 간직한 채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 한다고 믿는 주전론자다. 하지만 이 상황은 아니다. 우리의 삶과 사랑하는 이들의 목숨이 볼모가 될 것이 뻔한데 ‘전쟁 불사’를 외칠 수는 없다.

한반도는 ‘그들만의 전쟁터’가 된 중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물론 미중일 등 세계 1, 2, 3위(G1,G2,G3) 경제대국과 G8인 러시아 등의 이해가 상충하는 곳이다. 구시대적 진영 논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칫 한발의 총성도 ‘모든 전쟁의 어머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화약고중의 화약고다. 그 가운데 당사자인 우리의 운명이 타인 손에 휘둘리며 결정 날 수 있다는 현실이 그저 억울하다. 다만 앞서 걸프전의 경험과 94년 위기 당시 북폭 계획을 궁극적으로 철회했던 그들의 이성적 판단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이번에도 염려는 덜하다.

bel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