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극우와 손잡은 사관학교 총동창회…무엇을 위한 결집인가
尹 옹호 '엄마부대·한변'…'김용현=구국영웅' 구국동지회 등 연대
논리적 비판·설득은 뒷전…장외전 치닫는 사관학교 통합 반대
- 김기성 기자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부정선거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 20일 육·해·공군사관학교 총동창회가 이재명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관학교 통합(국군사관학교 창설)과 관련해 마련한 오찬에서 육사 총동창회 관계자가 한 말이다.
정부가 시도하는 정책의 한계를 짚고, 개선 방향을 제시할 자리에서 나올 이유가 없는 발언이었다.
당시에는 육사 총동창회 집행부의 일원에 불과한 한 개인의 주장이라서 한 귀로 듣고 흘렸다. 하지만 총동창회 측이 사관학교 통합에 반대하며 준비하는 장외 여론전이 '산으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사관학교 폐교 저지 국민연대'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위한 모임이 아니다"
총동창회 측은 지난 21일 이재명 정부의 국군사관학교 창설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예비역단체 총 130여 곳이 참여하는 국민연대를 발족하면서 "'자유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겠다'는 애국심 하나로 뭉친 국민 연합체"라며 '정치와의 거리두기'를 강조했다.
메시지 못지않게 메신저도 중요하다. 국민연대가 '정치 일절 배격'을 내세웠지만, 참여 단체들 다수가 그간 특정 정치 성향에 경도된 언동을 이어왔고, 사관학교 통합 정책과의 직간접적 이해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참여 단체 명단에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옹호하거나 현 정부를 향해 비난에 가까운 정치 구호를 내 온 단체들이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실형이 선고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옹호하며 이재명 대통령이 정권을 찬탈했다고 주장한 '대한민국 엄마부대', '더불어민주당 해산운동'을 내건 '트루스코리아',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한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등이 대표적이다.
국민연대에 이름을 올린 예비역 단체인 '육사 구국동지회'와 육사 출신 예비역들은 지난 15일 광화문 집회에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피켓을 들거나 관련 복장을 착용한 채 참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국동지회는 12·3 계엄의 주역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구국의 영웅'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국민연대가 정부 정책에 대한 논리적 비판도 갖추지 못한 채 정부를 향한 비난 목소리만 키운다면, 정치 양극화와 부정선거 집회로 지칠 대로 지친 여론의 동의를 얻기는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육사 출신들이 5·16 군사쿠데타,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 탄압을 주도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의 총동창회 측이 쿠데타에 동조했던 것은 아니지만, 선배 세대가 군부 통치 30년 동안 공고하게 다진 토대 위에 그들이 성장해 사회적 선망과 동경을 받으며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이 하반기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사관학교 통합 문제와 함께 육사의 쿠데타 책임을 함께 거론한 것과, 쿠데타와 동떨어진 지금의 총동창회라도 도의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여론의 목소리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하지만 앞선 쿠데타를 대하는 총동문회의 태도를 보면, 사관학교 통합을 반대하는 그들의 주장이 보다 폭넓은 여론의 호응을 떠나, 동정조차 얻기 어려워 보인다.
박판준 육사 총동문회장은 지난 12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을 면담하고 기자들과 만나 "육사가 원죄를 지고 있으니 육사 총동창회장이 대통령님께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도 할 테니까 만남의 자리를 한번 가지게 해 달라(고 안 장관에게 요청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내가 동창회를 대신해서 (대통령께) 사과 말씀을 드리고, 그다음에 사관학교 통합하는 것은 이치에 안 맞으니 조금 물러주십시오(라고 하겠다)"라고 말했다.
또 박 회장은 "전두환 대통령 같은 경우는 돌아가신 뒤에도 국립묘지도 못 가고 화장한 뼈를 집에 그냥 단지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며 "(쿠데타에 관여했던) 모든 사람 훈장 다 뺏기고 처벌 다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의 발언은 앞선 군사반란에 대한 처벌은 이미 이뤄졌고, 사과가 필요하다면 사관학교 통합 문제 철회와 맞교환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사과의 방향이 국민이 아닌 이 대통령을 향해 있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총동창회가 통합 반대 진영을 대표할 만한지를 두고는 꾸준히 의문이 제기돼 왔다. 20~30여 년 전 경험에 기반한 비판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의문이라는 점에서다. 이들은 현행 사관학교 체제를 유지할 때 받을 사익이 없고 오로지 '애국심'만을 위해 나섰다고 강조했다.
총동창회의 목소리가 공론장 대부분을 점해 나가는 동안 앞으로 군을 이끌어갈 지금의 생도들과 입시생들, 그 학부모들의 목소리는 점점 묻히는 모양새다.
총동창회 측이 오는 26일 예정된 국군사관학교 창설 공청회의 통합 반대 측 토론자로 예비역 영관장교·장성들로 채운 것도 미래 세대 소외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멋모르는 후배들은 물러나 있어라'는 세대의식, '서울대에 갈 돈이 없어서 사관학교에 갔다'는 집단 엘리트 의식,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명예'를 지키려는 이기주의 때문에 총동창회가 전면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그간의 비판이 이어지는 이유다.
애국이라는 순수한 마음과 불확실한 미래로 불안해할 후배들을 향한 걱정, 자신의 인생을 바친 군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이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 그 누구도 비판할 수 없다.
하지만 '극우'로 불리는 이들과 연대하고, 정부 정책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기보다 장외전에 치중하고, 군을 떠난 선배들의 목소리로 공론장을 채우는 모습은 그들의 대표성과 사관학교 통합에 반대하는 진심을 다시금 의심케 하고 있다.
goldenseagul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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