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oke Now!" 하늘에 대한민국 그리는 '블랙이글스' 탑승기 [르포]

T-50B 후방석 타보니…꺾고·돌리고·뒤집어도 흔들림 없는 칼군무
화려한 무대 뒤 폭염 속 안전 지키는 정비사·항공촬영사도 있었다

(원주=뉴스1) 김기성 기자

"Smoke, Now!"

7번기 'Solo' 조종사의 무전과 동시에 T-50B 항공기 2대의 엔진 끝에서 일제히 흰색 연막이 뿌려지더니 이내 하얀 태극무늬가 강원도 원주 상공에 펼쳐졌다.

뒤이어 항공기 2대가 직선으로 연막 띠를 만들 때 다른 두 대의 항공기가 그 주변을 나선 형태로 교차 비행하며 연막 리본 띠를 그리는 '더블 헬릭스'(Double Helix) 기동을 선보였다.

지난 6일 우리 공군의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와 함께한 40여 분간의 비행은 블랙이글스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를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다만 비행 내내 등허리와 손에서 땀이 마를 틈이 없었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지난 6일 국방부기자단을 T-50B 항공기에 태우고 '더블 헬릭스'(Double Helix) 기동을 선보이는 모습. 2026.8.6./ⓒ 뉴스1(공군 제공)

긴장은 블랙이글스의 둥지인 원주기지로 출발하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원주기지를 향하는 버스에서 '비행 중 사고가 발생하거나 부상을 당하면 탑승자 본인 책임'이라는 취지의 서약서에 서명하며 서울에서 출발했다.

원주로 가는 동안 블랙이글스 비행기 8대가 다닥다닥 붙은 채 삼각편대로 비행하는 영상을 소셜미디어(SNS)에서 보고 자칫 비행기끼리 날개가 부딪혀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기체를 뒤집고 흔들며 역동적으로 기동하는 동안 강한 중력을 견뎌야 한다는 말은 익히 들었다. 하지만 지난 6월 중력의 6배(6G)를 20초간 견디는 가속도 내성 훈련(G-Test) 등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수료하며 익힌 'L-1 호흡법'은 되살리기에 너무 먼 기억이었다.

원주기지에 도착해 '원피스 비행복'으로 환복한 후 비행 일정과 기상정보, 안전수칙 브리핑을 받고 기자를 하늘로 실어올릴 4번기 'Slot' 조종사 정희문 대위와 짧게 대화 나눌 시간을 가졌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4번기 'Slot' 조종사 정희문 대위(왼쪽)과 지난 6일 강원도 원주기지에서 T-50B 탑승 전에 가진 기념촬영.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와 검지를 편 손동작은 4번기를 의미하는 수신호라고 한다. 2026.8.9./ⓒ 뉴스1(공군 제공)

조심스럽게 '평소에 멀미를 자주 하는지'를 묻는 정 대위의 질문에 '전혀 없다고' 답하는 찰나, 기자의 비행복 주머니에서 뭔가가 만져졌다.

공군에서는 비행 중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투명한 구토 봉투'를 비행복 주머니에 먼저 넣어두고 우리의 입영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T-50B 항공기가 전력화된 이후 10여 년 동안 후방석에 민간이 탑승해 에어쇼 기동을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민항기와 달리 꺾고 뒤집고 흔드는 역동적인 비행의 연속을, 그것도 처음 탑승하는 민간인이 견디기 어려울 것이란 걱정이 앞섰던 모양이었다.

화려한 공연 뒤 숨은 피·땀·눈물…폭염 속 안전 지키는 정비사들
지난 6일 강원도 원주기지에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운용하는 T-50B 후방석에 기자가 탑승해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는 동안 공군 정비사(왼쪽)가 G-Suit와 좌석의 안전장비 결속 상태를 확인하는 모습. 2026.8.6./ⓒ 뉴스1(공군 제공)

비행 중 하체 혈류 정체를 막는 'G-Suit'(내중력복)와 해상구명장비 '하네스'를 조종복 위에 착용하고 탑승을 위해 활주로 한쪽에 있는 T-50B 격납고(이글루)로 가니 정비사들과 지원인력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체감온도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에서 그늘이라고는 이글루 내부밖에 없는 활주로다 보니, 정비사들은 더위와 햇빛을 막기 위해 하나같이 '쿨토시'와 햇빛 가리개가 달린 모자나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철제 사다리를 타고 후방석에 탑승하자 땀에 젖은 웃옷에 이마에서 쉴 새 없이 땀을 흘리는 정비사들이 안전 장비 결속을 도와줬다. 수고로움 속에서 꼼꼼한 사전 점검으로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정비사들의 도움으로 항공기에 탑승한 이후 출동 전 점검을 거쳐 마침내 오전 11시쯤 기자를 태운 T-50B가 하늘로 거침없이 날아올랐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정비사들은 탑승 전 2시간 30분 전부터 나와 기체를 점검·정비했고, 비행 후에는 1시간 30분에 걸쳐 총 4시간 동안 무더위 속에 비행기를 돌봤다고 한다.

공중 칼군무의 뒷이야기…엄격한 선발과 혹독한 200시간 비행
지난 6일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운용하는 T-50B 후방석에 기자가 탑승 후 콕핏에서 촬영한 실제 기동 모습. 6대의 항공기가 빠른 속도로 비행하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칼군무를 선보이는 모습에 연신 감탄했다. 2026.8.9./ⓒ 뉴스1(공군 제공)

이륙 직후 T-50B 6대는 약 3m 간격으로 결집해 삼각편대를 이룬 채 가속도 내성 절차와 항공기를 180도 뒤집어 비행하는 배면 비행의 적응 시간을 갖고 본격적인 곡예비행에 들어갔다.

항공기들은 삼각편대를 유지한 채 일제히 하늘로 솟구치더니 기체를 뒤집어 하강하는 루프 기동을 시작으로 기동을 선보였다. 비행 내내 1번기와 6번기에는 전문 항공촬영사 홍관영 상사와 위인태 원사(진급예정)가 각각 탑승해 어지러운 기동 속에서 흔들림 없이 셔터를 누르며 비행 순간을 기록했다.

대열 선두의 1번기 엔진이 기자가 탑승한 4번기 캐노피에 닿을 정도로 근접 비행할 때는 공포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6대 항공기가 시속 700~800㎞로 빠르게 비행하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선보이는 칼군무에 경외감을 느꼈다.

블랙이글스의 고난도 조종술과 한 몸과 같은 팀워크는 그들의 조종사 선발 절차에서 시작된다. 블랙이글스는 자격요건을 갖춘 일선 조종사에게 지원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신입을 선발한다고 한다. 하고 싶다고 아무나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 6일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운용하는 T-50B에 탑승해 강원도 원주 상공에서 촬영한 비행 모습. 2026.8.6./ⓒ 뉴스1(공군 제공)

기본적으로 700시간 이상의 비행 경험, 비행교육과정성적 상위 30% 이상의 기준을 충족한 조종사 중 리더십, 팀워크 등 세평이 우수한 이들이 블랙이글스로부터 지원 제안을 받는다고 한다.

세부 평가 후 기존 팀원들의 만장일치 찬성을 받아야만 팀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조종을 잘해도 인성에 하자가 있으면 팀워크를 저해해 비행 중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준에서 비롯된 것이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블랙이글스에 들어온 인원들은 6개월여에 걸쳐 자신이 맡을 자리의 전임자로부터 도제식 교육과 각종 훈련을 받은 후에야 3년 임기의 조종사 임무를 본격적으로 수행한다.

블랙이글스 조종사들은 훈련, 실기동 등을 위해 일선 전투기 조종사들의 연평균 비행시간의 2~2.5배에 달하는 200~250시간 정도 비행한다고 한다. 급선회, 근접 비행, 반중력 저항 등 곡예비행에 장시간 노출되면서 조종사들에게 목디스크, 허리디스크는 대표 직업병이라고 한다.

남의 전투기로 시작한 에어쇼…이젠 국산 전투기로 세계 무대 입상까지
공군은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지난 2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세계 방위산업 전시회(WDS 2026)’에 참가해 에어쇼에 참가해 사우디 특수비행팀과 기념촬영하는 모습. (공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2.13 ⓒ 뉴스1

우리 공군 특수비행의 역사는 미군의 F-51D 무스탕 항공기 4대를 넘겨받아 1953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진행한 편대 비행에서 시작됐다. 블랙이글스의 정식 명칭인 '제53특수비행전대'의 '53'은 첫 편대비행을 한 1953년에서 따온 것이다.

이후 공군의 특수비행은 1966년 미군의 F-5A를 도입해 '블루세이버'라는 이름으로 본격화했고, 1994년 A-73B로 항공기 세대를 거쳐 2011년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개량한 T-50B를 전력화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국산 항공기를 갖춘 블랙이글스는 2012년 영국 공군 주관 에어쇼인 '와딩턴 국제 에어쇼'에서 대상을 거머쥔 데 이어 '로열 인터내셔널 에어 타투'에서 재차 대상과 인기상 2관왕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우리 공군의 우수성을 각인했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지난 5월 대구 동구 공군기지에서 열린 '스페이스 챌린지 2026 in 대구'를 축하하는 에어쇼를 선보이는 모습. 2026.5.1 ⓒ 뉴스1 공정식 기자

이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 에어쇼와 방산전시회에 참가해 명성을 떨치고 있다.

블랙이글스는 연간 50여 차례 국내외 행사에 참가한다고 한다. 조종사들이 행사에 나가면 자연히 정비사들, 홍보팀들이 '한 세트'로 움직인다. 1년이 52주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사실상 매주 어디선가 관객들에게 즐거움과 우리 공군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셈이다.

짧은 비행이었지만 세계 곳곳의 하늘에 새겨진 대한민국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정비사들과 홍보과원들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견딘 조종사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대구 동구 공군기지에서 열린 '스페이스 챌린지 2026 in 대구'에서 트레이드마크 '태극' 기동을 선보이는 모습. 2026.5.1 ⓒ 뉴스1 공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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