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우디 협정 지켜보는 韓 전략은?…"美 지분 투자 병행도 필요"

세종연구소 "민수용 농축, 핵무장·핵잠 문제와 분리해야"
靑 안보실 중심 범정부 협상 전략 수립·한미 원자력협력기금 제안

박윤주 외교부 1차관과 앨리슨 후커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지난 6월 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 안보 분야 후속조치 협의를 위한 발족 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6.6.2 ⓒ 뉴스1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자력 협정을 체결하며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의 길을 열어줬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 개정을 추진하는 한국의 대미 협상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제언이 3일 나왔다.

아직 미국과 사우디가 체결한 협정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지금은 '사우디도 허용했으니 한국도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 대신, 핵연료 공급망 안정과 원전 수출 등 미국이 추구하는 소형원자로(SMR) 협력에서 한국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동 이익이 무엇인지를 앞세우고, 원전 연료 확보를 위한 우라늄 농축을 핵무장·핵추진잠수함 문제와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전봉근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이날 '세종포커스' 보고서 '트럼프의 사우디 농축 허용이 한국의 농축 도입에 미칠 영향과 시사점'에서 "한국의 핵비확산 기조는 농축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농축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외교 자산"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사우디의 원자력 협정은 사우디의 즉각적인 우라늄 농축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약 2년간 공동 타당성 조사를 거쳐 미국 기업의 '블랙박스형'(시설이 지어지더라도 사우디가 기술과 운영에 직접 접근할 수 없는 방식) 농축시설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한 조건부 절차다. 2년의 조사 결과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사우디는 향후 10년간 독자적으로, 또는 중국·러시아 등 제3국과 농축 협력을 추진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당성이 인정돼 블랙박스형 농축시설이 도입되더라도, 미국과 사우디는 별도의 후속 합의를 통해 미국 정부의 기술지원·수출 승인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전 연구위원은 이를 사우디에 대한 미국의 '우라늄 농축 전면 허용'으로 보는 것은 과장이라면서도, 미국이 농축시설 도입 경로를 열었다는 점에서 "농축 협력이 더 이상 절대적 금기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한국은 2015년 개정한 한미 원자력 협정에서 한국의 자체 우라늄 농축을 협의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했지만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다만 미국은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담긴 공동 팩트시트에서 양국 협정과 미국법에 부합하는 범위에서 '한국의 평화적 민수용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절차를 지지한다'고 밝히며 원자력 협정상 한국의 '농축 및 재처리' 권한을 확대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한미는 팩트시트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로 지난 6월 초 서울에서 첫 안보협의를 열고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문제를 논의했다.

전 연구위원은 다만 미국과 사우디의 협정 체결이 미국 의회와 비확산 진영의 거센 반발을 부를 경우, 미국이 후속 사례 확산을 막기 위해 한국에게 더 엄격한 조건을 내걸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이런 맥락에서 '사우디도 허용했으니 우리도 허용하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전 연구위원은 정부가 우라늄 농축의 목적이 핵무장 잠재력 증대나 국가적 위신 제고가 아닌 핵연료 공급망 안정과 원전 수출, 차세대 원자로용 연료 확보를 위한 민수·평화적 정책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핵잠재력 확보나 핵추진잠수함용 연료의 자체 농축 문제가 뒤섞이면 미국이 농축 협력을 지연시킬 수 있다"라고 경계했다.

또 "안정적인 한미동맹과 비확산 신뢰를 유지하면서 핵연료 공급망 안정, 미국 원자력산업의 이익, 양국의 공동 기술 개발과 국제시장 진출이라는 공동 이익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농축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는 농축 범위를 상업용 저농축우라늄으로 한정하고 농축도·생산량 상한, 핵물질 비축 제한, 연료 수요에 따른 단계적 증설 등 비확산 조치를 선제적으로 제시할 것을 주문했다.

농축기술 확보 방식에 대해서는 "한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독자적 농축기술 확보를 우선 추진하되, 필요에 따라 미국의 농축시설 지분 투자와 블랙박스형 시설 도입도 병행 검토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전 연구위원은 이를 위해 청와대·국가안보실 중심의 범정부 협상전략을 마련하는 한편,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기본법'과 '비확산 기본법'을 준비하고, 한미 공동 연구와 핵연료 공급망 개발 등을 지원할 '한미 비확산·원자력협력기금' 조성도 제안했다.

angela02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