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국경선화 작업에 관대한 유엔사…MDL 인근 군사활동 사실상 용인?

北, MDL 근접 '국경선화' 작업 놓고 '정전협정' 위반 판단 엇갈려
유엔사, DMZ 이남 출입통제권 韓 넘기는 'DMZ법'엔 "정전협정 위반"

합동참모본부가 자체 장비를 통해 확보한 접경지 일대 '국경선화'(남북 단절 조치) 작업에 투입된 북한군 모습. 북한군이 철책을 뒤로 한 채 모닥불 주변에 모여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최근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 이북 지역에서 MDL에 근접한 철책 설치 공사를 추진 중인 것과 관련해 우리 정부와 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입장이 정반대로 갈렸다.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으로 규정한 한국 정부와 달리, 유엔사는 '국경선화' 작업이 곧바로 정전협정 위반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상반된 입장을 내놓으면서다.

MDL 이북에서의 철조망 및 장벽과 지뢰 설치, 남북 연결도로 파괴에 이은 불모지 작업 등은 북한이 2023년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설정한 이후 본격화한 조치다. 북한은 이를 남북이 '국가'로서 새로운 국경선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국경선화' 조치라고 부르고 있다.

북측이 설치한 철조망 설치 일부 구간은 MDL 이북 100m 안쪽까지 긴밀히 인접해 있어 정전협정상 '적대행위 금지' 범위에 해당할 여지가 크지만, 관리 주체인 유엔사가 사실상 이를 용인하는 태도를 취한 셈이다.

그간 유엔사가 비무장지대(DMZ) 이남 구역에서의 평화적 출입 통제 권한을 나눠 갖거나, 해당 지역을 공동 관리하자는 한국 측 제안에는 부정적 입장을 피력해 왔다는 점에서 유엔사가 남북에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군, 접경지 활동 수위 점차 높이지만…경고 없는 유엔사

23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실 및 군 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전 전선에 걸쳐 MDL 이북 100m 안쪽 구간까지 철조망을 설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지역에선 MDL 위쪽 5~10m 지점에서 불모지 작업을 끝내고 탈북 방지를 막기 위한 지뢰 지대까지 부설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철책 길이는 80~90㎞에 달하며, 전술도로도 60~70㎞가량 설치하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는 전날 "북한군의 MDL 일대 장애물 설치를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 행위로 평가하고 있다"라며 "우리 군은 정전협정에 따른 유엔사의 책임을 존중하며, 북한군의 MDL 일대 작업 대응을 위해 유엔사를 비롯한 미 측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행동이 정전협정 위반이며, 유엔사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합동참모본부 역시 "북한군의 MDL 일대 장애물 설치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우리 군은 북한군의 MDL 일대 작업 동향에 대해 면밀히 감시하고 있으며, 유엔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지속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전협정은 1953년 유엔군사령부와 북한 및 중공 간에 체결된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MDL 기준 남북으로 각각 2㎞에 이르는 비무장지대(DMZ) 내 일체의 적대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우리 군은 지난 2년간 북한군의 접경지 활동을 '정전협정 위반'으로 규정하지 않아 왔는데, 최근 접경지 일대 동향이 '선'을 넘었다는 점에서 북한군의 행위가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강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DMZ를 완충지대로 설정한다는 정전협정 조항을 위반했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北엔 "협정 위반 아냐" 입장 내놓은 유엔사…韓 DMZ법엔 '원칙주의' 고수

반면, 유엔사의 해석은 우리 군의 입장과 180도 달랐다. MDL 인근의 '건설 행위 및 요새화'가 정전협정 위반으로 바로 연결되진 않는다는 유보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유엔군사령부는 "DMZ 내 활동은 전체 맥락 내에서 이해돼야 한다"라며 "건설 행위 및 진지구축, 방어 행위 또는 관련 인력의 존재만으로도 정전협정 위반이 자동으로 성립되는 건 아니다"라고 입장을 내놨다.

유엔사의 이같은 판단은 북한군의 일련의 활동이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유엔사는 남북 모두와 소통하는 조직인 만큼, 북한군은 국경선화 작업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피하기 위해 유엔사와도 소통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의 행위가 공격 의도가 없다는 판단을 유엔사가 내린 셈이다. 국방부는 유엔사 측에 북한군의 행위가 정전협정 위반에 해당한다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유엔사의 입장은 바뀌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보잭 전 전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부비서장은 이날 자신의 SNS인 'X'에 "유엔사에서 일하는 동안 북한군의 경계선 강화 활동이 적대적이라는 증거는 보지 못했다"라며 "한국군도 남측 지역에서 지뢰 및 울타리 장애물 설치를 한다"라고 주장했는데, 이같은 논리가 현재 유엔사의 입장이라는 추정이 가능해 보인다. 보잭 전 부비서장은 지난 2019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유엔사에 재직했다.

하지만 이같은 유엔사의 스탠스는 한국의 DMZ법 추진 등에 적용됐던 엄격한 '원칙주의'와 비교되는 측면도 있다. 자칫 유엔사가 북한의 행동은 묵인하고 한국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는 형평성 논란으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유엔사는 앞서 DMZ 내 비군사적·평화적 목적의 출입 통제 권한 일부를 한국 정부에 이양하는 방안이 담긴 일명 'DMZ법'에 대해 "정전협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강력한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정치적 현안에 대한 의사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고 원론적 입장을 유지해 왔던 유엔사가 이례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같은 반발에 국방부는 DMZ 남측구역의 관할권을 분리해 한·미가 공동 관리하는 절충안을 올해 초 미국 측에 공식 제안했으나, 유엔사는 아직 이와 관련해 유의미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국경선화 조치 등 접경지에서의 공세적 행위에 대해선 이렇다 할 제동을 걸진 않고 있지만, 한국의 추진 사항엔 엄격한 잣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한미동맹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측 지역을 둘러볼 수 없는 유엔사 입장에선 철책 등 장애물로 북한군의 무장화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되어 있는지 파악된 상태가 아니고, 그에 따라 위반 여부를 판단할 주체가 아닌 측면은 있다"면서도 "MDL 및 DMZ 지역에서의 남북 대치는 대체로 북한이 공세적, 남한이 방어적 태도를 주로 보여왔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도 유엔사가 일관적 잣대를 들이댈 수 있도록 꾸준히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