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나무호 공격 주체' 사실상 이란으로 특정?…이란 '해명'에 주목
고위 당국자 "이란 외 주체가 공격했을 가능성 작아"
'전면 부인'한다면 상황 악화…혁명수비대 등에 책임 돌릴 가능성도
-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정부가 1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피격된 'HMM 나무'호를 공격한 주체를 '이란 측'으로 기정사실화했다. 정밀 조사를 통해 확실한 증거를 찾은 뒤 구체적인 공격 주체를 최종 확정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란이 이제 적절한 '해명'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이란 이외의 다른 어떤 주체에 의한 공격 가능성은 상식적으로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고위 당국자는 이란과 미국에 의해 통항이 차단된 호르무즈 해협에 해적 등 주체를 특정하기 어려운 세력이 활동하지 못하는 상황인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그러면서 "(정부의 조사가 끝나고) 공격 주체가 확인되면 응분의 외교적 공세를 가할 것"이라며 "(선박 공격으로 인해) 인명피해도 발생한 태국 등 다른 나라 사례도 조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진행 중인 정밀 조사를 통해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을 찾을 경우 이란을 상대로 책임을 물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정부는 현재 나무호의 파손 부위에서 확보한 '미상 비행체'의 잔해를 한국으로 반입하기 위해 나무호가 정박 중인 아랍에미리트(UAE) 측과 협의 중이다. 또 국방과학연구원(ADD)을 중심으로 한 기술분석팀이 UAE로 추가 파견돼 잔해 분석과 어떤 무기체계가 선체를 공격했는지 등 정밀 감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고위 당국자는 이날 "정확한 증거 없이 이란에 무언가를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좀 더 조사를 해서 (증거를) 딱 제시하면 이란 측도 적절한 반응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누가 나무호를 공격했는가'라는 초기 단계의 조사 및 판단의 단계를 넘어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는 '증거 기반 외교전'에 돌입했음을 시사한다.
이란은 중동사태 발발 후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와, 혁명수비대(IRGC) 및 신정 지도부에서 나오는 입장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나무호가 피격된 뒤에도 이란의 정규군이 아닌 지역별 '결정 권한'이 있는 혁명수비대가 자의적 판단으로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 중인 선박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전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비행체를 쏠 수 있는 주체는 이란에만 여러 곳이 있다"며 이란 정규군과 혁명수비대 혹은 제3세력의 소행 가능성을 모두 열어둔 바 있다.
이란의 입장이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나올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지난 10일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나무호가 '피격'된 것이 확실하다는 정부 합동조사단의 1차 조사 결과를 상세히 설명했다. 쿠제치 대사는 관련 내용을 본국에 충실하게 보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란 측은 이후 침묵하며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이를 단순 무반응이 아니라 '전략적 침묵'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한국 측의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섣부르게 입장을 확정하면 외교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외교가에서는 향후 이란의 '대응 시나리오'로 △전면 부인 △혁명수비대·친이란 세력 등에 책임 돌리기 △간접적 유감 표명 및 재발 방지 약속 등을 거론하고 있다.
만일 정부의 최종 조사 결과가 이란의 '특정 세력'까지 지목하지 못할 수준으로 나온다면 이란은 "우리와 무관한 일" 등으로 전면적으로 '혐의'를 부인할 가능성이 크다. 이란의 무기체계로 밝혀지더라도 친이란 성향의 헤즈볼라 등도 이란의 무기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발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란 내 세력'의 공격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혁명수비대 강경파의 독자 행동"이라며 당국 차원의 책임을 축소하려 들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에도 한국과 이란의 관계는 악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의 대이란 규탄 및 배상 요구, 제재 등 강경 대응 필요성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직접적인 시인 대신 '불행한 사고' 수준의 간접적 유감을 표명하고 한국 선박 안전 통항 보장이나 재발 방지 약속 등을 제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예상한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란 외교부는 70% 이상의 확률로 끝까지 부인할 가능성이 크다"며 "과거에도 혁명수비대가 드론을 발사했다는 증거가 있어도 공식적으로는 부인한 사례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이란 외교부가 혁명수비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이라며 "외교부와 밀접하게 소통을 해도 이 사안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할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란은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방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라며 "우리는 결국 사과와 재발 방지를 받아내는 게 중요하고, 쉽지는 않겠지만 외교적인 문제 제기는 계속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yoong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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