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상황 바뀌었다…정부, 중동전쟁 종전 전 '실질적 기여' 검토

나무호 피격에 '종전 후 다국적군' 대신 美 MFC에 즉각 참여 가능성 부상
11일 한미 국방장관 회담서 美 공식 제안 여부에 주목

정부는 지난 4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HMM 소속 화물선 '나무'호에서 발생한 폭발과 화재가 '미상 발사체'의 타격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미상 비행체의 타격으로 피해 입은 선박 외부의 모습.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5.10 ⓒ 뉴스1

(서울=뉴스1) 김기성 김예원 기자 =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한국 선사 HMM(011200)의 '나무'호 화재 사건의 원인이 외부의 공격에 따른 것으로 파악되면서 정부가 호르무즈 일대에서의 우리 상선 안전 보장 문제에 보다 공세적으로 대응을 할 필요성이 11일 제기되고 있다.

그간 정부는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의 전쟁이 끝난 뒤 다자 협의체를 통해 중동과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평화를 위한 '실질적 기여'를 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명백하게 우리 국민을 향한 살상 목적의 공격이 감행됨에 따라 '실질적 기여'가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모양새다. 사실상 파병에 준하는 대응을 통해 '공격 주체'에 대한 압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중동사태 발발 후, 나무호의 피격 전까지는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정 체결을 전제로 한 영국과 프랑스 주도 다자협의체(호르무즈 해협 항행 자유 이니셔티브)에 참여하는 방안을 우선순위로 검토해 왔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나무호의 피격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항행 자유를 위해 추진하는 '해양자유구상'(Maritime Freedom Construct·MFC)에 참여하는 방안이 급격하게 우선순위 안건으로 올라온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MFC에 참여하기보다 중동 해역에서 작전 중인 '소말리아 해역 호송전대'(청해부대)의 작전 반경을 넓혀 독자적인 상선 보호에 나서는 것이 향후 에너지 공급선인 중동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가장 현실적이라고 보기도 한다.

정부는 '공격 주체' 판단에 신중 기하지만…"이란의 드론일 가능성 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6.5.10 ⓒ 뉴스1 임세영 기자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긴급브리핑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 중이던 HMM 나무호 관련 정부 합동조사단이 현장 조사를 지난 8일 실시했다"며 "조사 결과 지난 4일 미상의 비행체가 나무호의 선미를 타격한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현지시간 지난 4일 오후 3시 30분쯤 미상의 비행체 2기가 나무호 선미 좌현의 평형수 탱크 외판을 약 1분 간격으로 두 차례 타격한 사실이 확인됐다. 외부 타격으로 나무호 좌측 선미 외판은 폭 5m, 깊이 7m가량 부분까지 훼손됐고, 선체 안의 프레임은 내부로, 선체 외판은 외부 방향으로 돌출·굴곡되는 등 선체가 일부 파손됐다.

박일 대변인은 "공격 주체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또 조사를 해나갈 예정"이라면서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전문가들의 판단이 또 필요하며, 아마 정밀한 감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공격 주체를 예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외교부가 공개한 사진으로 봤을 때 이란이 중동사태 이후 주변국 공격 등에 사용 중인 중소형 드론에 의한 타격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외교부도 공격 주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전날 긴급브리핑과 동시에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1차 조사 결과를 공유했다. 사실상 이번 사고에 대한 이란의 '설명'을 요구하는 초치 성격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英·佛 다국적군 vs 美 MFC 줄 타던 정부…"MFC 참여 검토" 노선 잡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6.05.04. ⓒ 로이터=뉴스1

박 대변인은 아울러 "해양 자유, 미국의 해양자유구상(MFC)을 비롯한 미국 측 구상 참여 문제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다자협의체 참가 문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이란이 반대하는 미국 측 구상에 참여할 가능성을 굳이 언급한 것은, 이란을 공격의 주체로 보고 외교적 압박을 가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앞서 미국은 나무호 사건 발생 직후 그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며 한국 정부를 향해 '결자해지하라'는 차원으로 호르무즈 해협으로 조속하게 군사력을 투입하라는 압박을 제기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서 "이란은 선박 이동 과정에서 일부 공격을 가했으며, 여기에는 한국 화물선도 포함된다"면서 "한국이 (호르무즈 일대에) 와서 이 작전(프로젝트 프리덤)에 참여할 때가 된 것 같다"라고 밝혔다.

당시 정부는 나무호 사건의 원인이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확답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란 측의 '표적 타격', 즉 한국을 노린 공격이 단행됐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파병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의 목소리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유럽 중심의 '종전 후 다자협의체'보다는 미국 주도의 '즉각적인' 협의체에 참여해 나무호 사태 해결과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안전 보장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호 피격 확인 속 한미 국방장관 회의…MFC 참가 압박 고조 전망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 10일 오전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과 회담을 위해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워싱턴D.C로 출국 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2026.5.10 ⓒ 뉴스1 김진환 기자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의 국방부 장관이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양자회담을 가진다.

당초 국방부는 안규백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장관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시점, 핵추진잠수함(핵잠) 연료 도입 방법 등에 대한 논의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안 장관이 미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무호의 피격 사실이 확인되며 회담의 분위기도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그간 정부는 사실상 전시 상황인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 군 자산을 투입하기 위해선 한반도 정세가 안정돼야 하고, 국내법 절차상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등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결정의 시간을 버는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비록 공격 주체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도, 미국의 주장처럼 나무호에 대한 공격이 발생한 것은 명백하기 때문에, 헤그세스 장관이 재차 병력의 파견을 요구할 경우 이를 거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일각에서는 전쟁 상황에 따른 국회 동의, 상선 보호 두 조건을 모두 감안했을 때 현재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작전 중인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 해역 외곽으로 넓혀 상선 보호에 나서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보기도 한다.

해군 대형수송함 마라도함(왼쪽)과 구축함 왕건함. (해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6.18 ⓒ 뉴스1

청해부대 48진인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왕건함'은 이달 15일 경남 진해 해군기지를 떠나 6월 청해부대 47진 '대조영함'과 임무를 교대할 예정이다.

청해부대의 활동 지역에서 호르무즈 해협까지는 충무공이순신급 함정으로 3~4일 정도 이동해야 하는 거리로, 청해부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파병 요구를 했을 때부터 유력한 후보군으로 거론돼 왔다.

왕건함은 파견을 앞두고 전파 교란, 해킹 등 소프트킬 방식 대(對)드론 방어 체계를 보강하는 등 출항 준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왕건함은 지난 2020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고조됐을 때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호위 연합'에 참여하지 않는 대신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까지 한시적으로 확대하는 '독자 파견' 때도 투입된 바 있다.

다만 국방부는 11일 정례브리핑에서 '나무호 피격과 관련해 현재 검토 중인 대응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관계를 토대로 유관 부처와 소통하고 있고, 필요한 지원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합동참모본부 역시 '나무호 피격과 관련해 청해부대의 대비태세 등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취재진 요구에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 중이고 현재 특별히 할 말은 없다"라고 말했다.

goldenseagul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