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확인된 미국의 '거래 외교'…韓, 안보·에너지 딜레마 깊어진다

韓 선박에 '사고' 발생하자…트럼프 "우리 작전 참여해라" 압박 강화
현안은 해결 안 되는데 청구서만 잔뜩 쌓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6.05.04.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들을 '구출'한다는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 작전을 불과 이틀여 만에 중단했다. 한국 화물선 'HMM 나무'호 폭발·화재 사건으로 인해 한국도 '프리덤' 작전에 동참하라는 요구는 일단 철회된 듯하지만, 트럼프식 '거래 외교'의 강력한 기조를 재차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정부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해석이 6일 제기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안보에 대한 동맹의 기여도를 관계의 중요한 척도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진행해야 할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원자력 협력 개정 문제에 있어 한미 간 불협화음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공세적 압박 줄인 美, 이란과 다시 '협상 국면'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과의 협상과 관련해 "완전하고 최종적인 합의를 향한 큰 진전이 있었다"며 '프로젝트 프리덤'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이란과의 협상 진전에 따른 '합의'의 결과라고 밝혀 빠르게 치솟던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긴장은 일단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앞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은 이번 전쟁의 원인이 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동 작전인 '에픽 퓨리'(Epic Fury)가 종료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루비오 장관 역시 미국의 군사작전이 '공격 중심'에서 '방어 중심'으로 전환됐다면서 긴장 국면을 일단 진정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정부의 입장에선 큰 부담을 덜 수 있는 요인이다. 미국이 '프리덤' 작전에 대한 한국의 군사적 지원, 사실상의 파병을 요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은 프로젝트 프리덤과 관련한 선박 이동 과정에서 관련 없는 국가들을 향해 일부 공격을 가했다"며 "여기에는 한국 화물선도 포함된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4일 오후 8시 40분쯤(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인근에 정박 중이던 'HMM 나무'호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한 것에 대한 언급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나무호의 사고가 이란의 공격에 따른 것이라고 단정하면서 "한국이 (프리덤) 작전에 참여할 때가 됐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도 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프로젝트 프리덤 참여 가능성을 묻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며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 방어에 직접 기여해야 한다는 논리를 부각하는 등 미국은 나무호 사고를 한국에 군사적 지원을 요구하기 위한 핵심 수단 중 하나로 삼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혜택 봤으면 비용도 내라"…트럼프식 동맹 압박 반복

일단 '프리덤' 작전이 중단됐기 때문에 정부도 숨을 고르게 됐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 작전 참여를 검토하겠다면서도 '한반도 대비태세'와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 국내법 절차를 지켜야 한다면서 미국의 압박을 피하고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진입로 일대의 해상 봉쇄는 유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아직 모든 상황이 '해제'된 것은 아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프리덤' 작전 참여를 요구하며 "이것은 당신들의 선박이다. 그러니 방어에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언급한 바 있고, 헤그세스 장관 역시 기자회견에서 각국의 참여를 요구하면서 "그런 상황을 기다리지만 않고 여건을 마련하고자 한다"라고 발언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이 중동사태의 출구 마련을 위해 동맹들의 기여를 요구하는 기조는 지속될 것임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다. 특히 중동으로부터 에너지 공급을 받아야 하는 나라들에게 미국의 '역할'을 강조하며 미국 대신 '비용'을 치를 것을 요구하는 것이 중동사태에 임하는 미국의 기조라고 할 수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처럼 중동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며 "그에 대한 책임과 비용을 계속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중동사태 끝나도 문제다…핵잠 및 원자력 협력 문제 '난망'

문제는 한미 간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자꾸 미국의 '새로운 요구'가 제기된다는 점이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중동사태가 끝난 뒤 동맹의 기여도를 평가하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핵추진잠수함 도입이나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문제를 연계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미는 지난해 10월 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라 올해 1월부터 핵잠 도입과 원자력 협력을 위한 '범정부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으나, 미국이 대미 투자 지연과 쿠팡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아 5월까지도 첫 협의 일정이 잡히지 않고 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과 결부된 문제라면 이와 결이 다른 사안까지 연계한 것인데, 중동사태에 대응하는 미국의 기조도 이와 동일하다.

정부가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의 군함 파견 요구 때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프리덤' 작전 파병 요청은 빠르게 '검토'를 진행하며 미국에 외교적 제스처를 취한 것도, 이러한 미국의 일방적 거래주의 외교 기조가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호르무즈 해협 내 한국 선박 화재 사고와 중동 전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지만 별도의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미국의 대이란 군사 대응과 협상 국면이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서 섣부른 메시지를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이란 간 '다음 분기점'이 마련될 때까지 정부는 신중하게 상황 평가를 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프로젝트 프리덤'이 일시 중단되면서 한국도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시간을 번 측면이 있다"면서 "당분간 정부는 다른 국가들과 협의하며 대응 수위를 조율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