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박진경 대령 서훈 취소 언제…유공자 취소 심의, 반년 걸릴 수도

'유공자 지위 재검토' 심사위 명단 구성…심의엔 6개월~1년 걸릴 듯
'서훈 유지·취소' 근거 될 사료는 아직 못 찾아…현행법으로는 '박탈' 어려워

지난 15일 오후 제주시 한울누리공원 인근 고(故)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서 열린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 설치 행사에서 오영훈 제주지사 등 관계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뉴스1 고동명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제주도를 방문해 4·3 사건 진압 공로로 수여된 정부 서훈의 취소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유공자 지위 취소 절차를 앞둔 고(故) 박진경 대령의 추가적 서훈 박탈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국가보훈부는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이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고 보고 이를 취소, 유공자 지위를 원점에서 들여다볼 보훈심사위원회의 인적 구성을 검토하는 단계다. 다만 유공자 등록 근거가 됐던 서훈인 무공훈장의 적절성 여부를 따질 역사적 자료는 아직 확보가 이뤄지지 않아 현행법상 '서훈 취소'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30일 나온다.

보훈부, '유공자 지위 재검토' 심사위 명단 구성…심의엔 6개월~1년 걸릴 듯

보훈부는 박 대령의 유공자 지위를 원점 재검토할 보훈심사위원회 위원 명단을 구성하고, 회의 일자를 잡는 등 실무적 조처를 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앞서 박 대령은 지난해 10월 양손자의 신청으로 유공자 지위를 인정받았는데, 이는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본인 또는 유가족 신청이 있을 시 자동으로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게 되는 국가유공자법 제4조에 근거했다.

다만 4·3 사건 관련해서 역사적 평가가 갈리는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인정은 부당하다는 제주 시민사회의 반발이 이어지자, 보훈부는 양손자는 법률이 정한 유가족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그의 유공자 지위 인정이 절차적 하자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후 그의 유공자 지위를 보훈심사위원회 심의를 통해 다시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국가유공자법 제6조에 따르면 본인 또는 유가족 등 신청 대상자가 없을 경우 반드시 보훈심사위 심의 및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상 보훈심사위는 200명 내외로 구성되며, 법률·의료 등 전문 분야에 따라 분과를 구분한 뒤 자료 조사 및 청문회, 현지 조사 등을 거쳐 여러 단계의 심사를 거친다.

보훈부는 박 대령의 행적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다는 점을 고려, 보훈심사위 구성 시 역사학자 등 학계 전문가들의 인적 다양성에 방점을 두는 방식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첫 심의 일정은 인적 구성이 마무리된 이후 논의될 예정이다. 통상 보훈심사위 구성 확정부터 최종 의결까지는 약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 11일 오후 제주도청에서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와 고(故) 박진경 대령 국가유공자 지정과 관련해 면담하고 있다.ⓒ 뉴스1 오미란 기자
무공훈장 '서훈 취소' 근거 될 사료는 아직 못 찾아…현행법으로는 '박탈' 어려워

다만 이 대통령이 언급한 서훈 취소의 경우 무공훈장 수여의 근거가 되는 원본 자료를 찾지 못해 현행법상으로는 박탈이 어려운 상황이다.

박 대령은 사망 2년 뒤인 1950년 무공훈장을 받았다. 국방부와 보훈부는 당시 관련 문건뿐만 아니라 미 측 전사 자료도 수집해 검토했지만 시일이 오래 지난 관계로 서훈 취소 및 유지 자료로 쓰일만한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훈법상 서훈이 취소되려면 그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져야 하는데, 관련 자료가 전무해 '거짓'을 판별할 근거조차 없는 셈이다.

이와 별개로 국회에선 '제2의 박진경'을 막기 위해 서훈 취소의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제주 4·3 특별법과 상훈법, 국가유공자법 개정안이 추진 중이지만 아직 관련 상임위에서 계류 중이다.

한편, 박 대령은 1948년 5월 4·3 진압 작전에 투입돼 그해 6월 부하에 의해 암살될 때까지 한 달여간 제주도에서 진압 작전을 지휘한 인물이다. 제주에서 4·3 진압 관련 민간인 희생자가 대규모로 발생한 건 박 대령 피살 이후인 그해 10월부터다.

하지만 연대장 취임식 때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선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라는 발언을 하거나, 양민과 폭도의 구분이 어렵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총살하는 등 강경한 진압 작전을 펼쳤다는 증언도 있어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박 대령을 살해한 부하들은 북한에 동조한 좌익세력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당했으며, 박 대령은 사망 2년 뒤 1950년 무공훈장을 받았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