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이란대사 "韓, 비적대국 진입 수순…美 합의 불참 바라"

한국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 가능성 시사하며 '여론전'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가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 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6.3.26 ⓒ 뉴스1 최지환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는 26일 한국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비적대적 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서 "한국이 계속 미국과의 합의에 동참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향후 한국 정부의 외교적 행보에 따라 선박 통행 여부를 결정하겠다면서 미국과 거리두기를 유도하는 외교전, 여론전 차원의 언급으로 풀이된다.

쿠제치 대사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까지 한국 선박 및 선원들의 안전과 관련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한국 선박 통항 문제에 대해 양국 외교장관과 대사관 등은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는 한국 선박 26척과 한국인 선원 178명이 발이 묶인 채 대기하고 있다.

다만, 쿠제치 대사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이란 정부의 사전 협조가 있어야 한다"며 "우리는 한국 선박 리스트와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달라고 한국 측에 이미 통보했다"라고 밝혔다. 이란이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협력을 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쿠제치 대사는 "이란은 한국 정부가 미국이 제안한 합의에 들어가지 않는 것에 감사하고 있고, 한국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길 바란다"라고도 강조했는데, 이는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파병 요청에 응하지 않은 것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앞서 24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란 정부는 '비적대적 국가'의 선박에 한해서만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의 공식 서한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해사기구(IMO)에 발송했다. 이란은 이 서한에서 "침략에 가담한 다른 참여국들의 선박은 비적대적 통항 자격이 없다"라며 관련 결정은 미국과의 협력 수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쿠제치 대사가 선박 통행과 관련한 '사전협조 필요성'과 선박들의 '정보 요구'를 언급한 것은 한국 선박의 통항 재개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미국의 외교적 움직임에 동참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가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 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6.3.26 ⓒ 뉴스1 최지환 기자

그는 한국과 이란 간의 소통 수준에 대해서는 "최근 조현 외교부 장관과 세예드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교장관 통화에서도 선박 관련 문제가 논의됐고, 이후 주한이란대사관과 주이란한국대사관이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라고만 말했다. 또한 "양측이 조속히 합의해서 한국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도 덧붙였다.

쿠제치 대사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등을 묻는 질문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은 민간 영역을 비롯한 대규모 공습을 당했는데 미국 기업들만 경제 활동을 자유롭게 하는 건 정당하지 않다"면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따라 전쟁을 시작한 이상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한 상황은 전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고 못 박았다.

아울러 쿠제치 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15개의 조건을 담은 협상안을 제시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현재 이란과 미국의 대화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며 "이란 고위급과 시민들은 백악관의 발언을 믿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평화 분위기를 만들며 다시 이란을 공습하기 위한 시간을 끌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이란대사관은 기자회견에 앞서 '피로 물든 천사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기도 했다. 10분가량의 영상에는 공습으로 아버지를 잃고 오열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과 시민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이란 시민들의 모습이 담겨 여론전을 위한 이날 기자회견의 '의도'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plus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