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 혼란 재현에…한미 '핵잠수함·원자력' 협력 영향 불가피
트럼프, 관세 문제 수습 전까지 기타 사안 '후순위'로 미룰 가능성
정부, 당혹감 대신 상황 주시하며 신중한 대응 기조
-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미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위법하다고 판결한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플랜 B'를 통해 관세 정책을 관철한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한 혼란이 한미의 핵추진잠수함 도입 및 원자력 협정 개정 협상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 섞인 관측이 22일 제기된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11월 정상 간 합의 내용을 총망라한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관세 문제와 연계된 3500억 달러 규모의 한국의 대미 투자뿐 아니라 핵잠 건조,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또는 조정, 조선 협력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한미는 핵잠 도입과 원자력 및 조선 협력 등 3대 분야 협의 이행을 위해 곧 실무 협의를 본격 개시할 예정이었다. 미국 측 실무 협상단이 이르면 이달 말 방한해 대면 협의를 진행하기로 한 것인데, 미 행정부의 '우선순위'가 크게 바뀌면서 이 일정이 무기한 순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추진에 제동이 걸리면서, 미 행정부 내에서도 향후 대책을 놓고 혼선이 빠르게 정리되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대법원의 판결 이후 하루도 안 돼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모든 국가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역법 122조엔 대통령이 심각한 무역수지 적자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시적(150일)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의 결정 하루 뒤인 21일(현지시간)엔 10%의 관세를 다시 1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행정부 차원에선 상호관세 인상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를 이어갈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로 인한 사태의 대안으로 자동차, 철강 등 품목 관세의 근거인 1962년 무역확장법 232조를 비롯해 1974년 무역법 201조, 301조, 1930년 관세법 338조 등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새로 부과한 관세는 오는 24일 0시(미 동부시간 기준)에 발효돼 150일간 유지되며, 이후 연장을 위해서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트럼프 대통령이 여론의 지지를 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행정부도 대안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 때문에 핵잠수함 도입 및 원자력 관련 한미의 협상이 트럼프 행정부의 우선순위에서 크게 밀려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당초 1월로 추진됐던 한미 간 대면 협의는 2월 초에서 '2월 말~3월 초'로 연기된 바 있다. 곧 협의가 열려야 하지만, 미국 측은 아직 대표단 명단을 우리 측에 통보하지 않고 있다.
미국 측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당국자가 수석대표를 맡고 국무부, 국방부, 에너지부 등이 참여하는 협상팀을 꾸릴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행정부의 모든 역량이 관세 문제 해결에 투입돼야 하는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미국이 급과 격을 제대로 맞춘 협상팀을 꾸리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부는 당초 핵잠수함과 원자력 협정 개정을 위한 논의에 속도를 내 오는 11월 전 '불가역적' 상황을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11월 미국의 상·하원 선거(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 간 합의 타결 과정에서 관세 및 대미 투자 문제의 선결과 핵잠 및 원자력 문제가 연계된 듯한 태도를 취한 바 있다. 그 때문에 정부 내에서는 미 대법원의 판결 이후 일시적으로 당혹스러운 분위기도 감지됐으나, 현재는 신중하게 상황을 지켜본다는 기조로 정리된 듯하다.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주체는 미국이라는 점에서다.
청와대는 전날(21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김용범 정책실장 주재로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참여한 대미 통상 현안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미 연방대법원 판결의 내용과 파급 영향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도 '신중한 대응 기조'가 확인됐다.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이번 미국 사법부 판결로 국제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부는 한미 관세 합의를 통해 확보한 이익 균형과 대미 수출 여건이 훼손되지 않도록 한미 간 특별한 동맹관계를 바탕으로 우호적 협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25일(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리는 제2차 한·캐나다 외교·국방(2+2) 장관회의에 참석하는 조현 외교부 장관과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회의 참석 전후로 미국을 찾지 않고 곧바로 귀국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일단 관세 문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최종 해법을 지켜보면서, 미국 측에 핵잠수함 도입과 원자력 협정 문제는 관세와 별개의 사안임을 주지시킨다는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대미 투자를 위한 특별법 처리와 관련 계획도 '정상적으로' 추진하면서 미국에게 긍정적 시그널을 보낸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관세 및 대미 투자가 급해진 미국이 오히려 핵잠 및 원자력 협정 개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제기한다. 미국은 그간 대미 투자가 늦다는 이유로 핵잠 및 원자력 관련 협상에도 미온적이었으나, 상황이 급하게 바뀌면서 '줄 것은 빨리 주고 받을 것을 챙긴다'라는 기조가 부각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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