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원자력 협상 본격화…'천재일우→전략적 모호성' 전략 변경

2월말 늦어도 3월초·중순 협상 앞 '전략 카드' 노출 최소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29 ⓒ 뉴스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설 연휴 이후 한미 간 '핵추진잠수함·원자력 협정' 협상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 내 기류에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한때 '천재일우의 기회'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던 분위기에서 최근에는 '전략적 모호성'을 앞세운 신중 모드로 전환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조만간 미국의 범부처 협상팀과 함께 한미 정상회담 합의 사항을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의 안보 분야 이행을 위한 실무협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당초 2월 중 개최를 목표로 했지만, 일정이 1~2주가량 늦어졌다. 정부는 현재 이르면 2월 말, 늦어도 3월 초·중순까지 범위를 넓혀 미국 협상팀과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는 계획이다.

뉴스1의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상황은 지난해 11월 조인트 팩트시트 발표 전과 비슷한 분위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에도 상호관세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미 모든 협의를 마친 것으로 평가됐던 안보 분야 최종 합의까지 영향을 받은 바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투자특별법 입법 '지연'에 대한 불만으로 상호관세를 15%에서 25%로 일방적으로 인상하겠다고 선언한 뒤, 국회는 3월 통과를 목표로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도 일단 우리 측 행보를 "긍정적인 진전(a positive step)"이라며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미국 협상팀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중심으로 국무부, 국방부, 에너지부 등이 '원팀' 형태로 방한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방한 시기를 앞당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미국 협상팀 방한과는 별도로 외교·국방 수장이 미국을 방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고위급 채널 가동을 병행해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외교가에선 조현 외교부 장관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방미를 통한 '한미 2+2' 회담 개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다양한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구체적인 회의 개최 여부와 일정 등은 확정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만나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자신감' 대신 '신중 모드'…외교부 '전략적 모호성'으로 노출 최소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본격적인 미국과의 안보 분야 협상을 앞두고 외교부 내에선 전략적 모호성 기류가 감지된다는 분석이다. 협상 카드와 우선순위, 정부 구상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는 지난달 말 조현 외교부 장관이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보였던 발언과는 '온도차'가 있다. 당시 조 장관은 한미 원자력 협정과 관련해 농축·재처리 문제를 한꺼번에 논의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보면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의 기여를 중시하는 만큼, 한국의 대미 투자에 대한 '반대급부'로 협상 진전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정부는 여전히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겠다는 목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협상 환경은 녹록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조 장관이 초기 협상 국면에서 보였던 자신감과 비교하면, 최근 외교부 내에선 메시지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특히 외교부는 한미 원자력 협정과 관련해 '개정'인지 '조정'인지, 우라늄 농축 문제를 먼저 다룰지,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최우선 의제로 설정할지 등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협상 전략과 우선순위를 외부에 노출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외교가에서는 이를 '자신감 약화'라기보다는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으로 보고 있다. 협상이 임박한 상황에서 정부가 의도적으로 발언과 정보 공개를 최소화하며 협상력을 유지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정부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은 작은 발언 하나가 곧바로 협상 구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지금은 최대한 카드를 숨기고 판을 읽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정부의 신중 모드가 향후 협상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까다로운 협상이 불가피하지만, 한미 정상 간 합의 사항 이행에 대해 미국 측도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