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합의 깬 트럼프, 핵잠 도입도 '변심 리스크' 커졌다
트럼프 '韓 국회 탓' 이유로 일방적 관세 인상 예고…'합의 파기'
핵잠수함 도입·원자력 협정 개정 문제도 언제든 '딴지' 가능성 커져
-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가 15%로 합의한 자동차 등에 대한 상호관세를 전격 인상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양국의 공식 합의사항을 깨겠다는 이례적이자 국가 간 결례에 해당하는 행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심'이 앞으로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위한 협정 체결 논의와,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27일 제기된다. 이번 발언으로 양국의 공식 합의라도 본인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성향이 확인됐다는 측면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인 '트루스 소셜'을 통해 "한국 국회가 미국과의 무역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한국산 자동차·목재·의약품 등 주요 품목에 대한 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7월과 10월 정상 간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한국 입법부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미국 측으로부터 사전에 어떠한 공식 설명이나 통보도 받지 못한 상황이다.
한미는 지난해 11월 14일 관세·통상 및 안보 분야 합의 내용이 담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서)와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런데 이 문서에는 한국 국회가 팩트시트를 비준해야 한다거나, 투자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 기한 등이 명시돼 있지 않다. 한미는 한국 정부가 마련하는 '대미 투자법'의 국회 통과가 아니라, 법안의 국회 제출 시점에 맞춰 미국이 부과한 상호관세 인하를 시행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정부의 대미 전략투자 특별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달의 1일 자를 기준으로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소급 인하하기로 했다. 실제 지난해 11월 26일 관련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자, 미국은 같은 해 12월 4일 관보 게재를 통해 11월 1일 자로 상호관세를 15%로 소급 인하하며 합의 내용을 이행했다.
현재 국회에는 대미 전략투자 3500억 달러(약 507조 원) 이행을 위한 5개 법안이 패키지로 발의돼 있다. 이들 법안은 △전략투자 총괄을 위한 특별법(제정) △국가재정법 △한국은행법 △한국수출입은행법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으로 구성돼 있으며, 자금 조달 방식과 외환보유액 활용의 안정성을 둘러싼 이견으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행동이 나온 것인데, 정부는 아직 백악관이나 미국 행정부로부터 보다 구체적인 입장을 전달받는 등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미국 언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법원의 관세 위법 여부 판결을 앞두고 기습적으로 관세를 인상한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보도에서 만약 대법원이 행정부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다면 행정부가 관세를 인상하거나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트럼프가 선제적으로 한국 관세를 인상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 및 이행이 늦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한국을 압박하기 위해 강수를 뒀을 가능성도 있다. 최근 정부가 원화 약세를 이유로 올해부터 시작하기로 한 연 2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연기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같은 보도 내용에 불만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상·하원 선거(중간선거)를 의식해 연초부터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관세 및 안보 협상에 있어 '모범 동맹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 된 합의를 이룬 한국으로부터 빨리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돌발적인 발언이 한미 간 협상 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합의된 사안을 뒤집는 형식이 됐다는 점이다. 이는 관세 외에 다른 합의 사항의 이행에 있어서도 트럼프 대통령 및 행정부를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외교적 마찰로 비화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외교, 국방부에서는 벌써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핵잠 도입과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조정 등 다른 중대 합의도 뒤집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핵잠수함의 경우 한미 정상이 타결하는 방식으로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더더욱 '트럼프 리스크'를 주목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미는 이달 초부터 실무 대표단을 구성해 핵잠 도입을 위한 협정 체결과, 원자력 협정 개정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려 했으나 미국 측의 대표단 구성에 시간이 걸려 아직 본격 협의를 개시하지 못한 상황이다. 비록 안보 사안은 미국의 대중 견제 강화와 연계된 내용이 만다는 점에서 관세 문제와는 결이 다르긴 하지만, 미국이 2월에도 협의 개시에 미온적일 경우 안보 문제에도 '트럼프 리스크'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금 한미 합의는 국회 비준을 거친 조약이 아니라 행정 합의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마음을 바꾸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구조"라며 "트럼프식 '스트롱맨 외교'에서는 합의문에 없는 사안도 레버리지로 활용된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핵잠 도입 협의가 무기한 연기돼도 제도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는 만큼, 매번 살얼음판 협상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안보를 포함한 모든 현안의 압박 수단으로 활용해 왔고, 이런 변동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발언의 핵심은 입법화 지연에 대한 문제 제기로 보이는 만큼, 이를 방치할 경우 관세는 물론 핵잠 등 다른 현안에서도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 있다"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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